여전히 살아 숨 쉬는 자유지상주의의 기나긴 여정
『크랙업 캐피털리즘』을 통해 슬로보디언은 섬과 부족 그리고 프랜차이즈 국가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민족국가에 구멍을 뚫고 부유하는 자유지상주의의 안식처 건설을 시도한 다양한 행위자들의 모습을 추적했다. 이 책에서 그는 런던, 홍콩, 싱가포르 같은 국제금융 중심지에서부터 남아공과 두바이, 소말리아 등 남반구 지역을 거쳐 메타버스와 클라우드라는 온라인 세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구역들의 역사를 분석한다. 주권을 전유하고 변주하여 민족국가로부터 벗어나 시장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자유지상주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든 주역들과 그들의 구체적인 전략을 추적한다.
역사적으로 자유지상주의는 민족국가라는 정치제도를 부정하거나 그에 도전해 왔다. 19세기 자유방임의 야경국가론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국가의 권력을 최소화하여 자본주의 시장 질서가 사익 추구의 원리에 따라 작동할 수 있도록 국가의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30년대 대공황은 부정할 수 없는 시장실패를 보여 주었고 국가의 경제 개입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자유시장 질서의 후퇴 앞에서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보장할 수 있는 국가의 재구성을 꾀하면서 경제 논리를 교육이나 범죄와 같은 비경제적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법적 제도의 도입을 모색했다. 하지만 국가를 개조하려는 전면적인 시도는 항상 사회의 저항에 부딪혀 왔다. 민주주의와 사회적 요구 앞에서 시장 논리는 종종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옥죄고 있는 민족국가 속에서는 자유시장을 완벽하게 꽃피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급진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그것에 구멍을 뚫는 새로운 전략을 들고나왔다. 전면적인 도전이 아니라 조금씩 균열crack-up!을 가져오는 장기전을 택했다. 그 구멍에는 배타적이고, 민주주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다양한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자본을 유치하여 경제적 번영을 하는 것을 존재의 이유로 내세울 수 있는 구역을 만들었다. 동시에 구역은 국가 간의 차이를 이용한다. 세계화 시대라고들 하지만 전 지구적으로 단일한 제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자본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곳으로 흘러들어 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막대한 자본을 유치하게 된 구역은, 이면의 불평등과 착취를 뒤로하고 화려한 마천루와 부동산 호황을 내세우며 각국 정부에 구역을 설치하라고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민주주의가 질식사한 시장경제의 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