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당신은 어디서 나온 사람이오?
시골 어르신들은 내가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방송국에서 나왔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내가 쓰는 렌즈가 특히 커서 그런 오해를 자주 받는다. 가뭄이 심했던 서산에서는 할아버님의 요청으로 영상을 찍은 적도 있다. 운산면에 가뭄이 극심하니 양수기를 빨리 보내달라고 부탁도 하셨다. “어르신 찍기는 찍는데, 이걸 어디로 보내요?”라고 여쭤보니 그건 기자가 알아서 해야지 그것까지 알려줘야 하냐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경기도 여주에서는 내복만 입고 콩을 털던 할아버님이 나를 보자마자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곧바로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나오셨다. 카메라를 든 나를 군청에서 나온 사람으로 착각하신 것이었다. 괜히 민망해 하실까 봐 “사진도 찍을 겸 취재왔어요.” 하며 적당히 둘러댄 기억이 있다. 김포의 고구마 밭에서는 낮부터 취한 할아버님이 나를 불러놓고 박근혜 씨 전화번호를 아느냐고 물으셨다. 모른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때부터 30분가량 쉬지 않고 정치 이야기를 하셨다. 전라남도 무안에서는 인상 좋은 할머니께서 그냥 보낼 수 없으니 커피라도 먹고 가라고 붙잡으셨다. 그래서 정말 감사한 마음에 사진 몇 장 찍어 드렸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 티브이가 없어서 찍어줘도 볼 수가 없어”
이런 오해를 받을 때마다 책임감도 함께 느낀다. “사진만 찍지 말고 이런 한심한 상황을 세상에 좀 알려!”라고 하신 어느 할아버님의 말씀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그분들의 이야기를 옮겨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주말에는 또 어디를 갈까? 하며 인터넷 지도를 살펴본다. 나는 논두렁이나 밭고랑에서 어르신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두런두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정말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듣는 질문이 있다.
“그런데 당신, 어디에서 나온 사람이오”
“아, 어디서 온 게 아니고요. 그저 사진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닌, 나처럼 평범한 사진가는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 나는 일찌감치 그것을 ‘진심’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