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보이지 않는 시詩라는 놈
한때는 너를 잊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실은 비 내리는 쓸쓸한 오후
먼 산만 바라보며 살았다
빙글빙글 인생길 돌고 돌아 그 자리
다시 내 몸 구석구석 박혀 있는
너를 길어 올리기 시작했다
너라는 보퉁이를 끌어안기 시작했다
끌어안고 며칠을 두고 울었다
이제는 그때의 슬픔도
우정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인생은 시와 같은 것
시는 인생 같은 것
중얼거리며……
2019년 여름에
인천 간약골에서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이며 때로는 안락이고, 사치라고 생각하다가 詩가 아니면 나를 연소해 내고 풀어낼만한 다른 길이 없어 운명처럼 시를 씁니다.
안개비 자욱한 하늘/ 햇살 한자락 보이지 않는다/ 살갛을 스치는 산정의 바람/ 따스한 너의 가슴에서 살라고/ 기도한다/ 흔들리는 산사의 한 켠에 앉아/ 피가 시키는 대로 너를 사랑하지 못한 채/ 몸을 말리고 머리를 말리고/ 그대가 구석구석 박혀 있는 실핏줄의 혈관까지도 말리며/ 눈을 감는다/ 오늘 내 사랑의 뿌리는/ 널 위해 연초록으로 피어나지 못하고/ 그대의 행복을 향해/ 가슴 미어짐으로 밀리고/ 눈물로 밀린다/ 애가 터지는 산사 찻집 마당/ 운무에 휩싸인 나무 아래/ 잊어야할 그대 손 가만히/ 가슴으로 어루만지며/ 조용히 내리는 이슬비만 쳐다본다/ 슬픈 내일만 올려다본다/ 끝내 가둘 수 없는 사랑이여/ 너를 들어올릴 수 없는/ 가엾은 물방울들이여/ 널 잊을 수 없다고 눈 부릅뜨는 부엉이여/ 날 흔들어다오 땅이 뒤집힐 때까지/ 날 데려가 다오 세상 끝으로...
김정숙의 詩 '날 흔들어다오, 땅이 뒤집힐 때까지' 전문 (2004년 2월 15일 알라딘에 보내주신 작가코멘트)
제가 썼는 줄 알았는데 제가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이 저로 하여금 오늘을 있게 한 지난 세월과 사람들에 대해 훈장을 주어야 한다고 옆구리 콕콕 찔렀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달려가고 떠밀려 가던 세월 속에서 넘어지고 쓰러진 사람들이 눈에 밟혀 철조망을 붙잡고 울고 우금치 고개를 떼굴떼굴 굴렀습니다. 월남에서 돌아오신 후 목욕탕을 가시지 못했다는 참전용사님 앞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고 고마령의 독립군들 앞에서는 짱구과자도 과분해 목이 메었습니다. 아, 그리고 천도교 교당 앞의 병국이 아저씨, 난 무슨 염치로 그분의 이름을 다시 부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