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아예 멈추지 못한 건 내 소박한 불온함 때문이었다. 민주화의 성과가 자본의 차지로 돌아가고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갈수록 희망의 빛이 사라져가는 현실이 만들어준. 나를 '비현실적 근본주의자'라 말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모든 사람이 신념과 원칙에 가득 차 살기를 바라는 몽상가는 아니다.
나는 단지 사람들이 제가 사는 세상의 얼개쯤은 알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를테면 오늘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는 수구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것, 세상은 민족이나 국가나 지역이 아니라 계급으로 나뉜다는 것,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면 우리는 곧 공멸한다는 것쯤은 말이다.
나는 여전히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고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믿는다. 생명이든 평화든 생태든 신앙이든 다른 어떤 소중한 차원에서든 말이다.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라서 훌륭한 사회체제가 무작정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그러나 훌륭한 사회체제가 보다 많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건 분명하다.
나는 좀더 훌륭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묵묵히 싸우는 활동가들을 알고 있다. 그들 앞에서, 글쓰기나 지식인 노릇과 관련된 내 부질없는 자의식은 그만 접어야겠다. 내 글이나 생산물이 그들의 활동을 조금이라도 더 거들 수 있도록 애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