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이야기의 즐거움에 관하여
《한밤의 시간표》는 나에게 계약이나 마감의 굴레가 딸려오는 일거리가 아니라 놀이동산 같은 작업이었다. 귀신 얘기를 마음껏 책 한 권 분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니! 쓰면서 정말 재미있었다.
(…) ‘한의 정서’ 중심의 귀신 이야기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으로서 귀신 얘기를 쓸 때 나의 문제는 교훈적인 결론으로 흐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무서운 귀신 얘기를 장편 분량으로 쓰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어려운 일이다. 공포 이야기, 괴담이 무서운 이유는 알 수 없는 것, 사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 다루기 때문이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길게 써봤자 알 수 없으니까 점점 재미없어질 뿐이다. 귀신 얘기를 길게 쓰려면 결국은 그 귀신이 어째서 귀신이 됐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헤치는 추리의 요소가 들어가거나, 같은 불운한 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게 막으려고 주인공(들)이 애쓰는 스릴러의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나는 추리소설이나 스릴러가 아니라 진짜 귀신 얘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까 짧은 이야기들이 모인 형태가 되었다. 연구소의 방마다 돌아다니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