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사유의 체계는 가능할지 몰라도 삶의 체계는 불가능하다고 삶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것을 하나의 이론적 체계로 담으려는 시도가 얼마나 부질없는지도 이해한다. 그런 시도에 대해 삶은 "존재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로 답할 것이다. 언젠가 헤겔은 "밤에 모든 암소들의 색깔은 검다"고 말했지만 장님이 된 철학자는 밝은 대낮에도 암소들의 색깔을 구별하지 못한다. 사실 세상에는 "엄마소와 똑같은 단 한마리의 송아지도 없다."
니체는 사물들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사상가다. 그는 사물들의 기원에 감추여져 있는 천 개의 주름을 본다. 철학자나 역사학자들이 제 시대의 기원이나 목적을 찬미하기 위해 단순화의 폭력을 행사할 때도 그는 그 아래 숨겨져 있는 이질적인 파편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가 찾아낸 미세한 조각들을 집어넣고 보면 사건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언더그라운드’는 내 안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는 식물이다. 이 어린 식물을 벗 삼아 공부를 시작했다. 이 책도 이제 겨우 몇 걸음을 뗀 공부길의 표지이다. 내게 ‘강독’은 저명한 학자들처럼 원숙한 공부의 결과물이 아니라 공부를 시작하고 진행하는 방편이다. 《서광》은 내게 공부의 길을 보여주었다. 아직 아이는 없었다. 거기 서 있는 것은 임신부였고, 고독이었고, 침묵이었다. 그것은 철학자였다.”
맑은 밤하늘을 보아도 유독 별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개개의 별들을 보기 때문이다. 별자리를 보려며 별에서 눈을 떼어야 한다. 화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화폐가 무엇인지 알기 우해서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화폐로 사용되는 사물에서 눈을 떼어야만 우리는 화폐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