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면서 혼자인 때도 있었지만 혼자가 아닌 때가 더 많았다. 어쩌면 그러기에 누구보다 혼자 있음과 외로움은 동일 범주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있어도 마음에 찬 바람이 불 때가 있고, 혼자 있어도 마음 훈훈할 때가 있다는 것을, 곁에 누가 있어 마음이 더 스산할 수 있고, 세상과 뚝 떨어져 홀로 있어도 얼굴에 비쳐드는 한 줄기 햇살만으로 천하를 다 얻은 느낌일 수 있다는 것을.
대학 시절, 난생 처음 큰마음 먹고 혼자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내 나름대로는 갈림길에 선 시점이어서 홀로 미래를 설계해 봐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 여행의 기억이라고는 사람으로 붐비는 버스에서 시선 둘 곳 없어 난감하던 내 당황한 표정과 ‘저 아가씨가 왜 혼자 저러고 돌아다니나’라는 눈빛들뿐이다. 물론 그들은 내게 신경도 안 썼을 게다. 다만 혼자의 시간을 즐길 만한 능력이 없던 내 마음이 괜시리 주눅이 들어 움츠러들었을 뿐이었다.
혼자이기에 행복한 순간, 혼자이기에 여유롭고 혼자이기에 고독하지 않은 순간, 이 책에는 그런 순간들이 한껏 소개되어 있다. 산장에서, 산책길에서, 카페에서 누릴 수 있는 맛과 소리와 풍경과 향기가 듬뿍 담겨 있다. 정적 속으로 가만히 휘파람을 날려보낼 때의 희열과, 욕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향해 건네는 독백과, 나만의 저녁 만찬 테이블을 차리고 켜보는 촛불과, 외딴 섬 수도원 다락방에서 홀로 쓰는 생일 일기, 그 모든 행복의 경험들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진정으로 고독하다는 건 이토록 신나는 일이다! “고립과 슬픔과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독이기에, 독선적이어서 어쩔 수 없는 고독이 아니라 어울림을 알기에 선택한 고독이기에 말이다.
_옮긴이의 글 (‘고독의 미식가가 되자’) 전문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카사노바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생생한 로맨스, 또 매혹적인 18세기식 요리법을 배울 수 있어 행복했다. 카사노바가 18세기의 서유럽 생활상을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대담하게 기록했던 인물인 만큼 서양 역사의 한 자락을 들추어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당시의 귀족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음식을 먹었으며, 어떻게 유희를 즐겼는지 깊이 음미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