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9일이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미국에 가면 잘 못하는데도 영어로 한 번씩 기도가 나온다.
“Whatever You say, I am ready to listen to You”(무엇이든 말씀하옵소서, 저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이다).
이 리트릿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영혼 깊은 곳에서 이 기도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한 15분 정도 걸었을까? 걸으면서 기도하는데 어디서 소리가 들렸다.
“I love you.”
걸음을 멈춰 섰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산속 한복판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겠는가?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I love you so much.”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 안에서 들리는 음성이었다. 그리고 그 음성은 내가 익히 아는 것이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들렸던,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 온 바로 그 음성이었다. 나는 그 음성을 신뢰했다. 나의 신뢰가 헛된 적은 없었다. 때로는 그 음성에 응답하면서 십자가를 지기도 하고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로 가기도 했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인도하심이었다. 바로 그 음성이었던 것이다. 그 음성이 두 번째로 내 안에서 영혼을 때린 것이다.
“I love you. I love you so much.”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은 격동하고 안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서 세 번째 음성이 들려왔다.
“I trul-ly, trul-ly love you”(내가 너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랑한다). 영어 표준어로는 물론 ‘truly’다. 하지만 내가 들은 그 음성은 너무나 강한 파토스가 실린 악센트, ‘trul-ly’였다. 그러고는 내 안에서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마음속에 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심장부터 시작해서 오장육부까지 뜨거운 격정이 영혼 전체를 휘몰아치는데, 그 순간 내 앞에 필름처럼 사진한 장이 딱 찍혔다. 환상, 즉 비전(vision)이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내 앞에 딱 찍혔다. 그리고 그 사진은 내게 명료하게 말했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한다.”
무슨 이야기일까?
“내가 너를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을 주기까지 사랑한다.”
십자가의 사랑이 머리가 아니라 영혼 전체로 적셔져 왔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황송하고 감사한지, 어린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다가 엉엉 울다가 온 산이 떠나갈 정도로 웃기를 반복했다. 옆에 누가 있었으면 제정신이 아니라 미쳤다고 이야기할 상황이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처음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한 열 배는 더 강한 것 같았다.
저녁에 한국에 있는 아내와 통화하며 이 이야기를 했더니, “하나님이 당신이 지난 6년 동안 고생한 것을 아시네요. ‘종아, 수고했다’ 하고 위로해 주시는 거네요”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음성이 아니었다. 지난 6년간 잘 견뎌 주어서 고맙다고 위로해 주시는 음성이 아니었다. 그런 조건부 사랑 고백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불과한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는 고백이었다. - 들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