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저의 초기작에 속합니다. 출간까지 거의 10년쯤 걸렸으니까요.
......... 책이 되는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고약한 녀석이야>는
무녀리 자식처럼 안타까워서 가슴으로 품어주고 싶어요.
어렵사리 세상에 나왔으니 친구가 많이 생기기를 바랄 따름이에요."
- 작가 인터뷰 중에서
외로운 어린아이, 야단맞고 어둠 속에 있는 어린아이, 따돌려진 어린아이, 책을 읽는 어린아이,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한 어린아이, 꿈꾸는 어린아이... 그 모든 어린아이들을 간직한 채 글을 쓰는 일이 내가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법이에요. 그리고 또 다른 어린아이를 만나려는 노력이랍니다.
아마 나에게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우물이 있는 모양이다. 거기에는 차마 끊어 내지 못한 두레박줄이 여전히 드리워져 있고 거기 어디쯤엔가 걸려 있던 풍경 하나를 건져 올린 건 목까지 차올라 삼켜지지 않던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커다란 나무 아래서 빈 의자를 보고 발이 묶여 버린 그날, 왜 하필 아버지의 집에 남아 있던 기울어진 의자가 떠올랐는지.
너를 야단치면서 외할머니한테 야단 맞던 어렸을 때 생각이 났어. 엄마도 너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거든. 나처럼 너도 엄마의 관심, 사랑을 훔쳐 내고 있었나 봐.
엄마는 그 때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너도 그럴까? 그러면 좋겠다. 그래야 이런 실수를 다시 안 하지. 혹시 이런 실수를 또 하더라도 엄마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지 마. 잘못하거나 부족한 데가 많아도 우리끼리는 서로 기대고 지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야.
우리는 본능적으로 슬프고 아픈 걸 덮어두려고 하나 우리의 경험 기억은 결코 사라지거나 없는 것이 되지 않는다. 가장 예민한 세포에 은닉되었다가 더할 수 없이 절망적일 때 드러나 잔인성을 보여 준다. 그래서 상처와 아픔에 대한 화해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상처의 증거라는 점에서 유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어떤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맞는 조각에 가닿기까지 외로울 수밖에 없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모서리에 다치고 누군가를 다치게 만들기도 한다. 아픈 상처, 사라진 기억까지 포함했을 때 비로소 내가 완성된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도깨비는 사람을 해치는 귀신이 아니라 사람을 염려하고, 사람에게 두려움을 가르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옛날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도깨비를 보면 착한 사람은 도와주고, 나쁜 사람은 혼내 주거나 짓궃게 장난을 걸잖아요.
옛 어른들이 자연을 두려워하고, 사람이 다칠까 봐 염려하는 마음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던 게 아닐까요? 우리는 때때로 착각을 해요. 우리가 나무나 땅을, 혹은 풀이나 곤충을 보살펴야 한다고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를 보살피고, 봐 주는 건 오히려 그들이랍니다. 나무, 땅, 풀이나 곤충은 늘 우리를 용서하고 먹여 살린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있어요. 문자가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기쁘고 슬프고 두려운 것들을 이야기로 만들어 남겼습니다. 그래서 죽지 않고 전해진 이야기에는 반드시 어떤 집단의 독특한 전통과 삶에 대한 가치관이 들어 있게 마련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판단을 해야 하고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는 조상의 가르침이 다양한 이야기 속에 녹아 있지요.
일본은 매년 몇 번씩이나 독도가 일본의 소유라는 문서를 만들어 외국에 보내곤 합니다. 어이없는 행동이지요. 그때마다 우리는 분노하고 목청껏 비난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보여 주는 문서를 근거로 이성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든. 고달프고 외로운 섬 독도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이지요.
이는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