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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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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모두의 승리를 위하여>

모두의 승리를 위하여

경제는 멈춰 서고 굶으며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 질주했다 아픔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찾아 헤맸다 너무 아픈 겨울이었다 그래도 봄은 오고 있었다 희망의 싹 기지개를 켜며 봄을 몰고 있었다 소중한 봄이 성큼성큼 오고 있다 아픈 겨울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봄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촛불의 꿈

촛불의 꿈은 언제 완성되려나 메아리 없는 소리들이 아우성치는 마른 하늘가 만나지 못한 넋들이 울면 갈 길 잃은 흰 구름 흩어지네 혹시 꺼지지나 않았을까 촛불 노심초사하는 가슴 위로 찬바람 불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잘못된 채로 시간은 흘러가는 것일까 아니겠지 모든 것은 정의로운 방향으로 달려가겠지 설마 아무런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 촛불 너를 안고 숨쉬다 보면 이 땅의 모든 거짓 주장 음해 사기 막무가내 사라질 거야 참았던 슬픈 눈물도 마르지 않을까 두려워 눈감은 가녀린 마음들도 일어설 거야 일어서서 달리겠지 오늘보다 더 추운 내일은 오지 않겠지 1980년 서울의 봄과 5·18 광주민주항쟁, 1987년 6·10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한가운데서 온몸으로 현실에 부딪쳤다. 1980년대 전반은 학생운동으로 후반은 노동운동으로 내 청춘을 바쳤다. 그리고 민주화가 완성된 1990년대 중반까지 기자 생활을 열심히 했다. 가정사적인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 시기 비교적 기자 생활에 충실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일요신문, 민주일보 노조위원장, 언노련 초대 중앙위원 겸 대변인 등을 거치면서 언론노동운동에 헌신했던 나는 1991년 문화일보 창간 멤버로 기자 생활을 새롭게 시작했다. 당시 사장이었던 이규행 씨(작고. 전 한국경제신문 사장)는 일본의 메이저 신문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산케이 신문에 대하여 조직은 물론이려니와 논조에 대해서도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들 매체는 경마를 매우 중요하게 다뤘다. 고 이규행 사장은 이 현상을 보고 문화일보도 경마를 고정면으로 신설할 것을 지시했다. 내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종합일간지 최초로 매주 2면씩 경마를 고정면으로 다뤘다. 경마 예상 적중률도 매우 높아 경마팬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런 인기를 이유로 『알기 쉬운 경마 여행』이라는 내 생애 첫 번 째 책을 출간했다. 이어서 『경마 사전』, 『경마 길라잡이』, 『김문영의 베팅 가이드』 등 전문서적을 잇따라 집필했다. 그 당시는 경마는 모든 스포츠 종목 중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어서 책들이 꽤 많이 팔렸다. 전문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칠 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강요받는 시기가 찾아왔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라는 국가적 변란이 그것이다. IMF 경제위기는 국민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재벌들에게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강요되었다. 현대그룹은 1998년 1월 19일 정주영 회장이 직접 문화일보 경영에서 철수하겠다는 안을 전면에 내세운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문화일보도 지면 축소와 인원 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해야 했다. 인원 감축으로 명예퇴직을 신청받았다. 나는 여러 날 밤을 지새우며 고민한 끝에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폭풍우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홀로 항해를 떠나는 돛단배였다. 거센 모험과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 퇴직금에 더하여 7개월치 급여를 명예퇴직금으로 받았다. 1998년 4월 9일, 퇴직금과 아파트를 처분하여 한국경마문화신문사를 설립했다. 임금을 받고 생활하던 노동자에서 임금을 줘야 하는 상황으로 신분의 변동이 생겼다. 책임감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대기업이야 막대한 자본을 이용하여 많은 이윤을 창출하지만 10여 명의 인원으로 출발한 한국경마문화신문사는 자영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1년이 지나면서 이윤이 발생했다. 나는 이후 『로또보다 좋은 경마』, 『말산업으로 융성하는 나라』라는 전문서적을 더 출간하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던 중 2016년 가을~2017년 봄, 또다시 엄청난 변혁의 시간을 맞이한다. 나는 또 그 변혁의 현장에 있어야 했다. 촛불을 들고...... 촛불의 거대한 힘은 정권을 바꾸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혁명이었다. 세계사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대변혁이었다. 그러나 촛불의 꿈은 아직 달성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면 촛불의 꿈이 이뤄지리라 믿었건만 꿈을 달성하기에는 아직도 먼 길을 고단하게 가야 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 위에 찬 겨울비가 내립니다 계절은 바뀌어 가을을 지나 겨울의 한복판 동짓날 긴 밤에 촛불의 마음과 마음을 적시는 찬비가 내립니다 정치에 농락당해 울분에 젖은 마음 위로 희망의 싹을 틔웁니다 혹한의 계절이건만 가슴에 품은 희망의 촛불 타올라 찬 겨울비를 데워 식어 가는 마음을 덥히고 있습니다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 시간에도 국민을 모욕하는 뉴스는 넘치고 국민의 힘을 누르려는 음모도 넘치지만 부득부득 나를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은 살아 울분에 젖은 마음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행여 이 비에 촛불이 꺼지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겨울비에 젖고 있습니다 ―「촛불 2」 전문 2016년 12월 22일에 쓴 시다. 당시에 노심초사하던 마음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벌어졌던 양극화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천박한 천민자본주의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민낯의 그 더러운 얼굴로 우리 생활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삶의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 아름다운 정이 통하던 공동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개인 이기주의만 팽배하여 핵가족화로 인한 병폐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복원해야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벌목을 끝낸 산기슭 그루터기에 앉아서 세상을 봅니다 산마을 굴뚝에서 아침 연기 피어오르고 일찍 잠 깬 산새들 새 아침을 노래합니다만 부자와 가난뱅이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 촛불 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어도 분양 안 된 인생들의 서러움이 거리를 헤매입니다 돈의 무게가 짓누르는 험난한 인생길 노후 대책 없이 직장 잃은 후배의 딱한 사연이 공허한 메아리로 그루터기 산기슭에 뿌려집니다 다른 쓰임새로 잘려 나간 나무들마다 잎이 없으면 뿌리도 없다는 비명이 들리고 그러나 나는 그루터기에 앉아서 청산은 날더러 물처럼 살라 하고 창공은 날더러 티 없이 살라 하네 맥없이 처량하게 되뇌입니다 고고한 척 청아한 척 되뇌입니다 ―「촛불 4」 전문 촛불의 꿈은 사실과 진실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었다. 촛불 혁명과 함께 사라졌어야 할 세력들이 그대로 남아 촛불의 꿈을 짓밟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 천년만년 찬란하게 꽃피워야 할 아름다운 문화와 전통이 촛불의 꿈과는 정반대로 모리배 협잡꾼들에게 훼손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표출한 것이다. 정제되지 못한 단어의 나열로 시다운 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비시 시첩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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