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고를 마치고 나는 1945년 8월 15일을 해방된 날로 생각지 않는다. 물론 태극기도 내다 걸지 않는다. 내게는 단지 그날이 일본이 패망한 날일 뿐이다. 그리고 제2, 3의 더 큰 외세가 이 땅에 들어오게 되는 불행을 잉태하던 날이었다. 이날은 오래도록 독립을 준비해왔던 선열들을 크게 낙담하게 한 날이었고, 그리고 아직까지 이날은 기개에 찬 우리 젊은이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해방(Liberation)이라는 의미 자체는 수동적이고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스스로 할 수 없는, 돌려줄 수 없는 부채를 안고 있는 불쌍한 단어이다.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는 절대 그들의 그날을 해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난 2년여 동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을 집필하기 위해 중국을 비롯한 여러 곳을 여행하며 많은 혼백들을 만났다. 만주와 중국 대륙 그리고 극동 소련 등지의 타국에서 독립을 위해 수많은 정당과 군사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다 명멸해간 선열들의 영령들을 말이다.
작품의 골격이 갖추어질수록 나는 소름끼치는 그들의 일관된 뜻을 보게 되었다. 장소와 방법이 달랐고 이념과 뜻이 달랐던 그 님네 모두가 갈망했던 것은 하나였다. 나는 신들린 듯 그것을 옮겨 적었을 뿐이다.
역사는 한결같던 그 님들의 소망을 저버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우리들은 잘못 가버린 못난 역사의 편린이나 건드리며 그 상처를 덧내듯 헤짚기만 했다. 역사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우리 선열들 모두가 원했던 대망의 역사는 이런 것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들의 꿈을 말이다. 추위와 배고픔, 병마로 죽어가면서도 끝내 이루려고 했던 정녕 꿈만이 아니었던 그네들의 원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이 작품에서 역사를 결코 호도하지 않았다. 단지 역사를 만들어가려고 하셨던 님들의 한맺힌 원풀이를 해드렸을 뿐이다. 탈고의 이 시간, 위대한 꿈을 영글리다 가신 님 모두에게 이 작품으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첨언한다면 이런 류의 작품을 쓴 것이 내가 처음이 아니었다. 17세기 불란서 극작가 몰리에르도 고대 희랍의 한 역사를 후세 사람들조차 너무나 안타까워하여 그 애석한 역사를 사람들의 원대로 희곡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 나도 그처럼 이 작품 속에서 선열들의 뜻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싶었다. 그것이 문학이 해야 할 책무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해방 이후 각계각층에서 친일 잔재를 정리하려고 했으나 미처 해내지 못한 일을 나는 이번 기회에 적어도 문학적으로나마 정리하고자 했다. 그것은 문학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내 개인의 안위에 불이익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본디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기 위해 집필되었다. 그러나 영화화되면 시나리오 작업으로 다소간 작품이 변형될 여지가 많겠기에 원본으로 남겨두고 싶어 소설로 먼저 출간하는 것이다.
끝으로 이 작품을 시작하게 하였고 끊임없이 독려해주신 동아수출공사 이우석 회장님과 이 소설 주인공의 유가족 대표이신 김창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아무쪼록 이 작품이 좋은 영화로 만들어지길 바라면서, 대중문화를 이끄는 첨병인 영화가 폭력물로만 돈을 번다는 근자의 세평을 일신하는 데 일조를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