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는 예술사상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불후의 업적을 남겨 200년이 지난 오늘 그 가치는 더욱 빛나고 있다. 김정희는 학술을 예술로 변용하는 재능에서 천재였다. 그보다 앞서 공재 윤두서, 표암 강세황, 자하 신위가 학문과 예술을 융합했고, 나아가 자하 신위는 이른바 시유화의詩有畵意는 물론이고 서권기書卷氣와 더불어 화중선리畵中禪理를 설파해 왔으며 김정희는 이 위대한 전통을 계승하여 학예주의자의 면모를 확립했다. 특히 그가 제창한 ‘문자향 서권기’와 더불어 추사체의 작품들은 언어와 문자 그리고 형상에서 실현 가능한 상상력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천재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우리나라 근대미술 지도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사실을 시대순으로 늘어놓는 그런 지도나 연표 만들기가 아니라,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그림지도 같은 것을 그리고 싶었다. 그 그림 안에는 사람과 사건도 보이고, 작업실 풍경과 교육기관,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람회 풍경은 물론, 숱한 이론가들이 모인 사상의 전당도 보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나는 의식의 지도를 그리고 싶었다. 시대의 움직임과 그에 대응하는 미술가의 의식, 집단의 활동과 흐름을 통해 가치있는 무엇인가를 추적하고자 했다.
나는 오랫동안 화가들을 찾아 헤맸다. 가까이 사귀는 화가들이 있었지만 늘 멀게만 느껴졌고 그래서 만난 적조차 없는 화가들부터 만나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헤매다가 어느 날 문득 그들이 남겨둔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바로 그림이 저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었음을 깨쳤다. 허깨비의 경계 속에서 노닐기 시작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