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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름:김기림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생:1908년, 함경북도 학성 (황소자리)

최근작
2024년 1월 <매일, 시 한 잔>

김기림 시집

◎ 어떤 친한 시(詩)의 벗에게 드디어 이 책은 완성된 질서를 갖추지 못하였다. 방황(彷徨), 돌진(突進), 충돌(衝突) 그러한 것들로만 찬 어쩌면 이렇게도 야만(野蠻)한 토인(土人)의 지대이냐? 그러면서도 내가 권하고 싶은 것은 의연히 상봉(相逢)이나 귀의(歸依)나 원만(圓滿)이나 사사(師事)나 타협의 미덕이 아니다. 차라리 결별을 ― 저 동양적 적멸(寂滅)로부터 무절제한 감상의 배설로부터 너는 이 즉각(卽刻)으로 떠나지 않아서는 아니된다. 탄식(歎息). 그것은 신사와 숙녀들의 오후의 예의가 아니고 무엇이냐? 비밀(秘密). 어쩌면 그렇게도 분 바른 할머니인 19세기적 ‘비너스’이냐? 너는 그것들에게서 지금도 곰팽이의 냄새를 맡지 못하느냐? 그 비만하고 노둔(老鈍)한 오후의 예의 대신에 놀라운 오전의 생리(生理)에 대하야 경탄한 일은 없느냐? 그 건장한 아침의 체격을 부러워해본 일은 없느냐? 까닭 모르는 울음소리, 과거에의 구원할 수 없는 애착과 정돈. 그것들 음침한 밤의 미혹과 현혹에 너는 아직도 피로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너는 나와 함께 어족(魚族)과 같이 신선하고 깃발과 같이 활발하고, 표범과 같이 대담하고 바다와 같이 명랑하고 선인장과 같이 건강한 태양의 풍속을 배우자. 나도 이 책에서 완전히 버리지 못하였다만은 너는 저 운문(韻文)이라고 하는 예복을 너무나 낡았다고 생각해본 일은 없느냐? 아무래도 그것은 벌써 우리들의 의상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물론 네가 이 책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영구히 너의 사랑을 받기를 두려워한다. 혹은 네가 이 책만 두고두고 사랑하는 사이에의 정신이 한 곳에 멈춰 설까보아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네가 아다시피 이 책은 쇼와 5년 가을로부터 쇼와 9년 가을까지의 동안 나의 총망한 숙박부(宿泊簿)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내일은 이 주막에서 나를 찾지 말아라. 나는 벌써 거기를 떠나고 없을 것이다. 어디로 가느냐고? 그것은 내 발길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어디로든지 가고 있을 것만은 사실일 게다. - 쇼와(昭和) 9년(1934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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