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니 11월이 다 끝나가는데도 아파트 화단엔 들국화와 진한 은행잎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노란 줄무늬의 길고양이도 여전했고 베란다에서 내다보는 저녁빛도 그대로였다. 반가웠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화기를 끈 채 계속 부재중인 체했다.
시집이 나오는 날 다시 켜든 전화기 속으로 몇몇 가까운 이들과의 나지막한 대화가 있으면 좋겠다. 그 대화 중에 문득 창밖으로 흰 눈발 날려 모두가 그쪽으로 눈길 향한 채 저마다의 아득한 생각에 잠기는 저녁이 있었으면 좋겠다. - 김경미 (지은이)
막내에의 글과 사진들 속에서 김밥 꼬투리처럼 정겹고 만만하고 사랑스러운, 그래서 우리 모두의 가장 먼 벌거숭이 시절을 가장 가깝게 재생시켜주고, 추억시켜주는 한 어린 자연인이자 아직 가공되지 않은 원석의 천진한 무구함을 즐겁고 빛나게 공유하였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너도, 나도 얼마나 작은 몸집 속에서 시작한 존재들인지, 그 분꽃대롱 같은 작고 여린 뼈들이 얼마나 만은 잎과 꽃과 열매를 매단 한 그루 커다란 성인나무가 되는지, 사람을 그렇게 키워내는 가정이란 얼마나 드넓은 집이고 텃밭이고 평야고 산맥이고 바다인지를 되새겨 볼 수도 있기 바랍니다.
하지만 정말로 바다가 그리운 건 여름만이 아닙니다. 계절에 상관없습니다. 봄에도 겨울에도, 일상이 십 원짜리 동전처럼 구차하고 초라할 때, 사랑이 단지 상처이거나 모욕일 때, 마음만큼 잘 안 되는 일과 칫솔컵만한 인간관계가 절망스럽고 쓸쓸할 때, 그럴 때면 언제나 문득 바다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보들레르가 "자유인이여, 언제나 너는 바다를 사랑하리"라고 노래했다면, 우리는 "일상인이여, 나는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