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어지간히 짧아졌다.
“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꽃 키가 점점 소모된다”는
지용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겠는가.
그저 손을 들어 소리의 높이를 가늠할 따름이다.
새천년 이래 나의 주제는 평화였다.
그러나 평화는 날이 갈수록 평화롭지 않다.
“평화는 비싸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이 말에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평화의 시는 평화라는 말 한마디 없이도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할 터이다.
나는 거기서 너무 멀리 있다.
내가 사는 시대가 그러하듯이.
2013년 가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니 말에 가시가 돋친다.
시집을 묶으면서도 마음이 흡족하지 않다.
좋은 언어로 세상을 채우자던 신동엽 시인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그 말이 나온 게 50년 전 일이니 내가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무렵의 일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 그 지점에 서 있다. 아니 ‘아직’이 아니라 ‘이제사’라고 해야 옳겠다. 나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미안하다. 그동안 내가 부려먹은 모든 언어에게도.
2019년 늦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