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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이름:이종희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

최근작
2024년 4월 <편안한 일상>

두 번째 아담

국내 유명 서점들과 인터넷서점 그리고 ebook(전자책)으로 소개되고 있는 작가의 新刊長篇小說 <신의 나라 토마스>, <크리스마스 목가>, <잎새 시계>, <샤갈선생>, <네모 행성>, <푸른 말 호박등불>, <성자의 낙서> 그리고 <은화를 입에 문 물고기>를 사랑해주시는 독자들과 문우들의 격려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상기 소설들은 국내의 대형서점을 통하여 유통되고 있으며 그 밖에도 인터넷 색인을 통하여 제목만 클릭하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모두 전자책으로도 제작이 되어 바쁘게 살아가는 독자들까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주도와 산간벽지, 전국의 국공립 도서관에도 비치가 되어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성원에 머리 숙여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작가의 아홉 번째 신작 장편소설 <두 번째 아담>을 통하여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내가 누군가의 등에 업혀있고, 여럿 장정들이 모여 바짓가랑이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고 웅덩이에 고인 물을 퍼내는 광경이다. 논에는 푸른 물결의 벼가 자라고 미루나무는 하늘을 찌르며 솟아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가 초임지에서 나를 낳았고, 주인집 누나가 나를 업고 마실을 나갔다. 그 후로 아이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왔다. 또한 나는 행운아였다. 부부교사로 정년퇴직을 하실 때까지 45년을 교직에 계셨던 부모님 덕에 안정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두 분이 교직에 봉직했던 기간을 합치면 자그마치 90년이나 된다. 아버지 스테파노와 어머니 마리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비바람과 폭풍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대기의 노래가 없이는 꽃은 춤출 수 없고 나무는 푸른 기운을 잃고 시들어버린다. 사랑할 대상이 있다면 천국이다. 그리고 미워할 사람이 있다면 더 행복하다, 그 미움이 사랑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불행은 사랑하거나 미워할 사람이 전혀 없는 경우뿐이다. 작가에게는 오랜 친구인 독자들과 속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하는 남다른 기쁨이 있다. 그간 출간되었던 작품들을 기억하고 격려해주시는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인간은 그 누구도 은둔자가 아니었다. ‘솨는 쇠에 대고 갈아야 날이 서고 사람은 이웃과 부대끼며 살아야 다듬어진다.’는 잠언처럼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사랑받은 만큼 사랑하고 또 용서하며 살았던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사랑의 부력이 악의 중력을 이길 때 우리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그 치열한 대결의 수평선을 딛고 서 있다. 가라앉을 것인가, 떠오를 것인가? 마침내 물 위를 걸을 것인가?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 작가의 말

오디세우스의 종이새

열세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뒤에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싶었다. 초기에는 연작소설이나 시 또는 운문과 산문이 혼재된 작품들도 있었지만, 나는 모두를 장편소설이라는 항아리에 담긴 다양한 맛의 포도주로 여긴다. 쉼 없이 달려온 숨 가쁜 경주마의 삶이었기에, 이제 산중턱의 길섶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지나온 미학적 오솔길을 되돌아보고 싶었다. 나는 열네 번째의 소설,「오디세우스의 종이새」를 나의 글쓰기의 전환기를 맞는 소설로 규정지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간의 열 세편까지가 나의 사상과 감정의 시원이었다면 금번의「오디세우스의 종이새」는 나의 중기 소설의 시작이며, 이는 내용이나 형식의 급격한 변화이기보다는 완급의 조절에 복무하는 의미를 지닌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나의 작품세계는 감각지식이나 논리적 지식의 경계에만 머물지 않았고, 그 언어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영지(靈知)의 우주에 대한 끊임없는 그리움으로 일탈의 여행을 지속해온 것이었다. 지나온 길이 이러하듯, 앞으로의 행선지도 미리 알 수 없으나 조금은 예상할 수 있는 무의식의 작용으로 전혀 다른 심급의 문을 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에 대한 별다른 결심을 갖고 있지는 않다. 2020년 봄, 나는 대구에 있었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도시는 일순간 멈춘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정적의 수면 아래로 거룩한 생명들은 활약을 쉬지 않았다. 나는 원래 있던 고독의 껍질에 또 한 겹의 장막을 두르고 그 깜깜한 정숙의 시간에 몰두했다. 내 마음의 호수 가운데에 위치한 긴 세월의 풍상을 지닌 단독주택,‘목촌과 월강’서재에는 고독과 형상을 만나지 못한 질료와 여분의 생각들이 떠돌았다. 나는 생명력 넘치는 인간들에게 드리워진 농밀한 어둠의 한 가운데로 종이새를 날려 보낸다.

은화를 입에 문 물고기

국내 유명 서점들과 인터넷서점 그리고 ebook(전자책)으로 소개되고 있는 작가의 新刊長篇小說 《신의 나라 토마스》, 《크리스마스 목가》, 《잎새 시계》, 《샤갈선생》, 《네모 행성》, 《푸른 말 호박등불》 그리고 《성자의 낙서》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들과 문우들의 격려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상기 소설들은 국내의 대형서점을 통하여 유통되고 있으며 그 밖에도 인터넷 색인을 통하여 제목만 클릭하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모두 전자책으로도 제작이 되어 바쁘게 살아가는 독자들까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주도와 산간벽지, 전국의 국공립 도서관에도 비치가 되어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은화를 입에 문 물고기 오랜 친구인 독자들의 성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가의 여덟 번째 신작 장편소설 《은화를 입에 문 물고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6만년의 섬’을 에워싼 바다에는, 육지와는 달리 강력한 부력이 작용한다. 그것은 지상의 것에 한정된 악의 중력에 반해 부상하려는 힘으로, 이 신비의 바다에 속해있는 동안은, 무거운 멍에도 가볍게 느껴지고, 큰 배도 둥실 물위에 떠올라 먼 길도 항해 할 수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물 위를 걷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혼자 밥 먹는 ‘혼밥’ 그리고 ‘졸혼卒婚’을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외로움의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미움일까? 아니면 욕심 때문일까? 고독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을 ‘6만년의 섬’에 초대한다. 2017년 부활절 즈음에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국내 유명서점들과 국공립도서관, 인터넷서점을 통하여 소개되고 있고 전자책으로도 읽혀지고 있는 新刊長篇小說 <신의 나라 토마스>, <크리스마스 목가>, <잎새 시계>, <샤갈선생>, <네모 행성>, <푸른 말 호박등불>, <성자의 낙서>, <은화를 입에 문 물고기>, <두 번째 아담>, <공원 교향악단의 부활>, 그리고 <큰 뼈를 보았을 뿐>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들과 문우들의 격려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작가의 열두 번째 장편소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새롭게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난다. 하지만 레위인과 사제가 강도를 당한 사람을 보고도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사마리아인이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이 루카복음서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강도를 당한 사람의 진정한 이웃은 바로 사마리아인이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하여 누구나 이미 익히 알고 있음직한 ‘진정한 이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려는 의도는 없었다. 나는 사마리아인보다 사제와 레위인 그리고 강도에 주목했다. 바로 그들이 우리들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이며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인이 착한 이웃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동안 레위인과 사제 그리고 강도는 어찌되었을까?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야만 될 도덕적 행위를 일말의 망설임이 없이 즉각 행동으로 옮겨야겠지만, 그런 도덕적 행위를 하지 않을 자유 또한 누린다. 레위인과 사제가 곤경에 처한 인간을 방관했지만 벌을 받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오늘도 우리는 그 광범위한 자유 속을 걸어간다. 그 공간에는 사마리아인과 레위인과 강도 등이 있다.

큰 뼈를 보았을 뿐

국내 유명 서점들과 국공립도서관, 인터넷서점을 통하여 소개되고 있고 전자책으로도 읽혀지고 있는 新刊長篇小說 <신의 나라 토마스>, <크리스마스 목가>, <잎새 시계>, <샤갈선생>, <네모 행성>, <푸른 말 호박등불>, <성자의 낙서>, <은화를 입에 문 물고기>, <두 번째 아담> 그리고 <공원 교향악단의 부활>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들과 문우들의 격려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작가의 열한 번째 장편소설 <큰 뼈를 보았을 뿐>으로 새롭게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단테는 『신곡』 (지옥의 문)에서 ‘나를 거쳐 가는 자는 일체의 희망을 버리라’라고 적고 있다. 희망이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인지? 우리 인간들은 모두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지구’라는 학교의 동창생들이다. 인간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름다운 지구행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졸업이 영원한 마지막이 될 것인지 또는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인지는, 단테가 노래한 ‘희망’이 그 순간 우리에게 있는가에 달려있다. 나는 지구학교의 동창생 모두가 매순간순간 그리고 언제까지나 기대와 희망 속에 살아가기를 원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신을 완전히 알지도, 충분히 설명하지도 못한다. 다만 신비의 숲이 있었다. 나는 소설가라는 기성복에 나의 몸을 맞추어 넣었다. 비교적 만족한다, 세상에 내걸린 모든 옷들 가운데 나에게 가장 편한 옷이었다. 나에게는 헐렁하고 고독한 자유가 있다. 그리고 공감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보낸다. 새롭게 집필을 시작 할 때마다 습작이 아닌 완주를 기원하지만, 나는 절반의 성취에 만족한 채, 또 다시 다음 항해를 기약하곤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때에도, 나는 항구에 잠시 기항할 뿐 그 항구에 영원히 귀속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늘도 힘을 내어 나의 마음 속 전지전능한 제독에게 타전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열한 번째 편지를 부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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