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1843년에서 1844년까지는 “혁명이 철학자의 머리에서 시작한다”고 믿었으나, 1844년 6월에 일어난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는 그에게 독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질서에 반대하여 들고일어나기 위해 굳이 철학자들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1845년 마르크스는 유명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를 썼는데,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를 일러 “새로운 세계관의 천재적인 맹아”라고 올바르게 규정했다. 독일 관념론과 프랑스 유물론을 모두 대신한 이 실천철학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혁명적 실천 과정에서 민중이 자신의 의식뿐 아니라 물질적 조건까지도 모두 변혁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청년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자신의 혁명 이론을 피억압 계급들의 자기 해방으로 정식화하게 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프롤레타리아트는 기성 부르주아 질서를 전복할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스스로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그의 실천철학과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자기 해방에 대한 헌신 사이에는 변증법적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혁명 이론은 어떠한 형태의 “대리주의”와도 모순된다. 대리주의는 피억압 계급이 누군가 위대한 지도자나 자칭 혁명적 엘리트에 의해 “위로부터” 해방된다고 본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