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시작은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다. 건축 설계를 하면서 아이디어와 건축 스케치를 계속 해오고 틈나는 대로 캘리그라피를 하다 보니 많은 자료들이 축척이 되었다. 지나온 흔적을 정리해볼 생각으로 지금까지 그린 스케치와 좋은 글 캘리그라피를 합쳐보았다. 우연하게 시작한 캘리그라피도 처음 시작 할 때 쓴 것들은 다시 보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라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서 책을 만들어 보았다.
스케치를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한 것 같다. 시중에 나와 있는 펜이란 펜은 다 써보았다. 스케치를 하다 보니 저절로 펜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어 따로 펜을 모아둔 박스가 있을 정도다. 커피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런색 넵킨에 그리는 것이 좋아서 커피숍에서 넵킨을 챙기는 것이 버릇이 될 정도고 요즘에는 흑백 톤의 펜스케치에 수채화나 동양화 물감으로 채색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어느새 수채화용지와 수채화용 스케치북, 트레블 저널이 책꽂이에 가득하다.
캘리그라피나 스케치나 똑 같은 것 같다. 손끝의 감각에 따라 결과물이 전혀 달라지고 강약을 표현하기 위해서 꾸준히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바삐 손을 놀려야 한다. 신기하게도 사람의 몸으로 하는 운동하고도 비슷하다. 머리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다 손에도 기억이 있기에 눈과 손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어디에서 멈출지를 몸이 알아야 한다.
몇 년 전 “펜스케치”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기회가 생기면 책을 다시 한 번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건축 책들은 너무 어려워 쉽게 읽고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책을 만들게 되었다. - 머리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