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민족을 무척 그립게 아름답게 본다. 그의 아무렇게나 차린 허술한 속에는 왕의 자리에 오를 고귀한 것이 품어 있다고 본다. 그의 재주나 마음씨나 또 그의 말이나 다 심상치 아니한 것이어서 장차 엄청나게 큰소리를 치고 큰 빛을 발할 약속을 가진 것으로 믿는다. 그는 결코 저를 잃음이 없이 민족의 단일성을 지켜 내려왔다. 그는 한 수행자였다. 그는 아직 설산 고행 중에 있는 석가세존이요, 광야의 금식 기도 중에 있는 그리스도다.
나는 우리 민족을 무척 그립게 아름답게 본다. 그의 아무렇게나 차린 허술한 속에는 왕의 자리에 오를 고귀한 것이 품어 있다고 본다. 그의 재주나 마음씨나 또 그의 말이나 다 심상치 아니한 것이어서 장차 엄청나게 큰소리를 치고 큰 빛을 발할 약속을 가진 것으로 믿는다. 그는 결코 저를 잃음이 없이 민족의 단일성을 지켜 내려왔다. 그는 한 수행자였다. 그는 아직 설산 고행 중에 있는 석가세존이요, 광야의 금식 기도 중에 있는 그리스도다.
나의 외우 고하(古下, 宋鎭禹)는 과거 조선에 우리가 숭앙할 사람이 삼인이 있다 합니다. 한 분은 단군, 한 분은 이조의 세종대왕, 그리고 또 한 분은 이순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서 고하는 날더러 삼부작으로 단군, 세종대왕, 이순신이란 소설을 쓰라고 권합니다.
단군은 조선 민중의 최초의 지도자로, 세종대왕은 조선 문화의 집대성 자로, 이순신은 충의의 권화(權化)인 무인으로 우리 조선 민족의 전형이요, 숭앙의 표적이 된다는 뜻입니다.
나도 이 점에서 고하의 말에 공명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 제목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에 나는 하몽(何夢, 李相協)이 이순신을 소설화할 것을 간권(懇勸)하던 것을 회억(回憶)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순신을 철갑선의 발명자로 숭앙하는 것도 아니요, 임란의 전공자로 숭앙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도 위대한 공적이 아닌 것은 아니겠지마는, 내가 진실로 일생에 이순신을 숭앙하는 것은 그의 자기 희생적, 초훼예적, 그리고 끝없는 충의(애국심)입니다.
군소배(群小輩)들이 자기를 모함하거나 말거나, 군주가 자기를 총애하거나 말거나, 일에 성산(成算)이 있거나 말거나, 자기의 의무라고 ale는 바를 위하여 국궁진췌(鞠躬盡瘁)하여 마침내 죽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변치 아니한 그 충의, 그 인격을 숭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 ‘이순신’에서 내가 그리려는 이순신은 이 충의로운 인격입니다. 나는 나의 상상으로 창조하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고기록에 나타난 그의 인격을 내 능력껏 구체화하려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