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권 역시 매 강의마다 작품, 갈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작품이면 작품, 갈래면 갈래, 주제면 주제별로 다루는 것이 일관성이 있어 보이기는 하겠지만, 필자가 실제로 강의를 할 때 그렇게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고전문학을 이해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며, 고전문학에만 있고 현대문학에서는 자취를 감춘 갈래들에 대한 설명 역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 고전을 옛문학으로만 묶어두지 않으려면 고전과 현대를 관통하는 끈을 잡아두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주제론적 접근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토별가>나 <옹고집전> 같은 개별 작품, '자연'이나 '원(怨)과 한(恨)' 같은 주제, 탈춤 같은 갈래 등을 함께 다루는 것은 그런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우리 고전 공부에 들어선 지 40년이 넘었다. 처음 지녔던 포부에 대자면 여전히 부족하지만, 뜻밖의 수확도 적잖이 있었다. 논문을 쓰거나 학술서를 내는 틈틈이 이런저런 인연으로 여러 지면들에 글을 쓰게 된 것이다. 특히 연재물의 경우는 일반 독자들을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고, 그를 계기로 내 공부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해 보는 가늠자가 되어주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최근 2~3년간 <이강엽 교수의 고전나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것이다. 다시 읽어가며 문장을 가다듬고 일부를 덧대기도 했지만 본의는 그대로 살려두었다. 예정보다 길게 연재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한 권으로 다시 묶어 새로운 독자를 만날 채비를 한다.
평소 마음속으로 외는 “책은 작은 세상, 세상은 큰 책”이라는 구호가, 이 책에 언급된 많은 고전 속에서 살아나기를 소망한다.
이 책에서는 주요 한국문학작품을 청소년 및 일반인이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도록 해설하고 평가하고 있다. 모두 20편의 서사물들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 고전문학작품 10편, 현대문학작품이 10편이다. 그러나 고전과 현대의 구별을 떠나 각 작품은 5개의 주제에 따라 묶여져 있다. 20편의 작품은 모두 작가 및 작품개관-평설-작품읽기(작품 중 일부)로 구성되어 있어 한국문학학습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루고 있는 작품과 차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갈림길에서의 선택
1. {양반전}의 '양반' 바로세우기
2. 개화와 친일-이인직의 {혈의 누}
3. 과도기의 꿈과 사랑-이광수의 {무정}
4. 갈매기, 자유로운 존재의 꿈 - 최인훈의 {광장}
누가 진정한 영웅인가
5. 영웅의 힘과 사랑-{조웅전}
6. 홍길동의 양면성-{홍길동전}
7. {아기장수 전설}, 그 불행한 영웅 이야기
8. 사실과 진실-김동인의 {대수양}
소외된 자들의 현실과 꿈
9. 외로움에 대하여-황순원의 {일월}
10. 잃어버린 청계천을 찾아서-박태원의 {천변풍경}
11. 길위의 길 -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12. 신재효의 {토별가}로 읽는 세상살이
깨달음의 소리
13. 깨달음인가, 처세술인가-이규보의 산문
14. {심청전}의 '눈 띄우기', 그 구원의 문제
15. 조신의 꿈,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조신몽}
16. 낙원 세우기와 경계 부수기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여성의 현실과 운명
17. 억압과 굴종을 넘어서-{박씨전}
18. {장끼전}의 남녀문제
19. 운명적 비극인가, 여성의 현실인가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20. 일제하 간도 이주민의 삶과 여성
-강경애의 {소금}
(2000년 12월 5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