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음성학(English phonetics)은 영어의 발음을 다루므로 외국어로서 영어를 학습하는 대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잘 알아야 하는 분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영문학과에서 개설되는 영어음성학 과목은 전공학생들마저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영어음성학 분야의 내용과 전문용어들이 매우 생소하고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외 대부분의 영어음성학 교재에 나와 있는 영어발음에 대한 설명이 너무 이론적이거나 개괄적이어서 영어 학습자들의 발음 향상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영어음성학 과목 수강 후 얻은 A+라는 성적이 실제적인 영어발음의 향상과는 거의 무관한 것이 사실상 현재 모든 대학교에서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필자가 이 책에서 주안점을 두고자 한 점은 독자들이 영어단어와 밀접하게 관련된 다양한 발음규칙을 배워서 어떤 영어단어들을 접해도 원어민과 유사한 발음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여 실제적인 발음의 향상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음향음성학은 소리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주요 목표로 하는 학문 분야이다. 소리의 특징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리공학과 관련된 물리적이고 수학적인 지식도 꽤 필요하므로 인문계 대학생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역자는 학부의 영어발음 관련 교과목에서 음향음성학적 방법을 활용하여 한국어 발음, 한국어식 영어발음, 그리고 원어민식 영어발음의 특성과 차이점을 비교하며 가르치고 있다. 수강생들은 간단한 음성분석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어발음과 원어민의 영어발음을 컴퓨터 화면에서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비교하면서 자신의 영어발음에 대해 진단을 내린다. 진단 중에 발견된 오류발음에 대해서는 역시 음성분석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자가교정을 수행한다.
영어발음에 대한 이러한 진단과 교정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음향음성학 분야의 주요 전문용어들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예들 들면, 파형, 주기파, 불규칙파, 기본주파수, 포먼트주파수, 배음, 강도, 스펙트럼, 스펙트로그램 등등이 있다. 음성분석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용어들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학부생 대상의 영어발음 학습을 주요 목적으로 할 때, 알맞은 음향음성학 교재를 선택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우수한 교재들은 음향음성학적 내용을 상당히 깊게 다루는 경향이 있어서 어문계열 학부생들이 접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표가 영어든 한국어든 관계없이 발음진단과 발음교정을 통한 발음학습이라면 음향음성학적 지식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학습자는 영어나 한국어의 발음에 대한 진단과 교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음향음성학 관련 지식만 잘 이해하고 있으면 된다. 이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음향음성학 교재로는 Peter Ladefoged의 ‘A Course in Phonetics’를 들 수 있다. 이 교재의 장점은 음향음성학 부분의 설명이 매우 쉽다는 것이지만 내용상의 분량이 다소 부족하여 추가적 설명이 없이는 음향음성학의 기초를 다지기가 용이하지 않다.
역자가 옮긴 Joan Baart의 ‘A Field Manual of Acoustic Phonetics’는 소리공학이나 수학적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도 음향음성학 분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초적 입문서이다. 많은 예시들을 제시하면서 음향음성학 분야의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용어와 개념을 대부분 다루고 있다. 또한, 음성자료에 대한 측정기준도 저자가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어서 실용성이 크다. 본 입문서는 학부의 영어발음 학습 관련 강좌 또는 대학원의 음향음성학 강좌의 첫 개론서로서도 적합하다. 영어관련 전공자는 물론 다른 어문계열과 언어병리학 전공자들이 음성분석 작업을 할 때 간편하게 참고할 수 있는 실용적인 매뉴얼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0년 6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