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살 때는 늘 바빴다. 꽉 짜인 시간에 맞춰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작품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보다 나은 여건 속에서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툭툭 털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작고 낡은 슬레이트집에서 살고 있다. 글 쓰면서 혼자 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동네 사람 증언에 의하면 일제 때 어떤 머슴이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머슴과 다를 게 없다. 나는 내 삶에 고용되어 하루하루 품을 팔며 사는 머슴인 것이다. 몇 년 전에 중고 필름 카메라를 하나 마련했다. 카메라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비가 그친 뒤의 말간 하늘, 들에서 묵묵히 일하는 농부들, 해질녘의 성곽, 눈 덮인 지붕을 파인더로 들여다보고 있으면 만화경 속처럼 재미있고 신비로웠다. 운전을 하고 가다가도 불현듯이 차를 세우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파인더의 사각 틀에 들어온 피사체에는 먼 유년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