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는 내 별명이다. 각을 세우지 않는 성격과 느린 발걸음 때문에 붙여준 애칭이겠지만 나는 나무늘보가 좋다. 내가 지나온 길에서 만난 무수한 자연과 작은 생명들과 바람의 노래까지 교감하며, 슬프고 기뻤던 순간을 애잔하게 직조한 시간이 고맙다. 소심하고 선량한 나무늘보가 세상과 말을 트면서 느낀 소묘, 혹은 가슴을 뭉클하게 울린 감동과 교감을 책에 담았다. 카이로스로 경험한 이야기들을 모은 여행 산문집이다.
삶의 모서리가 날카로워 생채기가 생긴 당신과 나를 다독여봅니다. 서툴러도 진심입니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날씨는 어떠신 지요?
수수한 옷차림으로 당신의 날씨를 기다립니다. 독특해서 외따로, 평범해서 무더기로 있는 마음들과 산책하고 싶어지는 가을의 끝자락입니다. 궁금해하면서 무심해지면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대와 열대 기단의 틈 사이에서 기압 변동 불안정한 당신의 날씨 속을 걸어갑니다. 그 길 어디쯤,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지점에서 달고 시원한 웃음을 터트리고 싶습니다.
부풀리지 않은 시간들은 갈증으로 갈라지고 메말라 버거웠습니다. 《당신의 날씨》를 출간합니다. 풋 설었고 짓물렀던 수다였습니다. 자기 이야기에 빠져 멈출 줄 몰랐던 모노드라마의 막을 내립니다.
어깨너머로 바라본 세상은 언제나 당당하다. 과잉과 결핍이 공존하는 시대에 냉정히 자르고 넉넉하게 품는데 타이밍을 놓쳐 나는 늘 의기소침해진다. 세상은 거인의 팔뚝처럼 완강하고, 만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허기에 나는 피로해진다.
삶을 문제해결의 연속이라 했던 이가 문득 생각난다. 한 호흡으로 단숨에 내리긋는 세상은 재미없다. 세상이 던지는 거친 질문을 막아주는 인연이 있고 훌륭한 플라시보 역할을 해주는 내 안의 목소리도 있어, 눈을 부드럽게 맞추는 다정함으로 내 터를 닦아가고 있다.
써 온 글들을 묶으면서 가슴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기포들이 설렘과 긴 여운으로 달곰쌉쌀한 맛을 안겨주었다. 내 안에 들어올 누군가를 위해 다리를 놓아 그를 가슴으로 들이고 싶다. 잘 정제된 고고함보다는 지지고 볶는 병렬로 사람 냄새나는 마음을 열어두겠다. 철 아닌 때에 내린 서리로 해를 입을지라도 내 안의 허튼 감정까지 상서롭게 보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