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

이름:양선희

최근작
2024년 9월 <정치적 인간의 우화 : 한비자의 스케치>

5월의 파리를 사랑해

절필 10여 년 만에 다시 소설습작을 시작했다. 나만의 그리움을 되새기는 작업 같은 거였다. 민아, 성재, 승우. 세 명은 내가 다시 습작을 하며 만난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은 힘을 합쳐 이야기를 끌고나가 어느 날 내 소설에 끝을 내주었다. 소설 말미에 ‘끝’ 자를 쓰고 나서 나는 오랫동안 그 글자를 보며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었다. 그 후에도 나의 습작은 이 세 명의 주인공과 함께 했다. 대여섯 편의 스토리가 이어졌고, 이 작품을 끝으로 세 주인공과 작별했다. 먼저 출판된 『카페 만우절』(2013, 나남창작선)은 이 작품을 끝낸 후 열기를 식히기 위해 썼던 번외편 같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 처음 만난 민아의 아버지 얘기를 쫓아갔던 이야기였고, 이후 내겐 새로운 주인공들이 찾아왔다. 이 작품은 내겐 습작기와 그 이후를 가르는 작품의 경계에 있다. 해외연수 중이던 10년 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에서 이 작품을 끝내고 나서야 나는 등단을 하고 소설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나처럼 내 주인공들을 기다려주었으면 하는 열망이 생긴 것이다. 그로부터 비로소 등단을 위한 단편들을 집필했고, 등단의 문을 두드렸고, 등단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이들 세 명의 주인공들로부터 시작됐다.

시간의 이별

문예중앙에서 출판됐던 소설 『5월의 파리를 사랑해』를 다시 낸다. 이 소설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건 고스란히 나 홀로 견뎌야 하는 ‘나의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가족도, 친구도 모두 내 어느 특정 시간 안에 존재할 뿐 나와 영원히 동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나의 시간이 변하면 관계도 변하는 게 삶이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사실. 어쩌면 그래서 빛나던 어느 한 순간을 가슴에 담고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변치 않는 것은 그 순간일 뿐이다. 이미 흘러간 시간이 바꾸어버린 사람과 관계는 돌아오지 않는다. ‘5월의 파리’도 그런 뜻이었다. 개인적으로 파리는 힘든 기억밖에 없는 도시다. 철도가 파업을 벌였던 11월 출장길에 들렀던 파리는 춥고, 말도 통하지 않고, 끝없이 걸어야 했던 기억만 남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였다. 그때 지인이 내게 ‘5월의 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얘기해주었다. 내가 보지 못한 ‘5월의 파리’와 힘들고 아무 감흥도 없었던 ‘11월의 파리’는 같은 파리였지만 오직 시간만이 달랐을 뿐이다. 이 개인적인 경험을 제목으로 표현했으나 설명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다 이번에 독서일가에서 다시 이 소설을 출판하며 제목을 바꾸었다. 사람은 매순간 이별을 한다. 이별은 사람의 숙명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별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그 순간, 그 시간과의 이별인지도 모른다.

여류 삼국지 1

삼국지는 읽는 나이대에 따라 느낌과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또 나이뿐 아니라 환경과 입장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교훈과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내가 처음 삼국지를 읽은 것은 학력고사가 끝난 직후였다. 하릴없이 방바닥 위를 뒹굴던 때였다. 사실 내 어린 시절엔 모든 어른들이 삼국지에 빗대 말하는 것을 즐겼다.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 ‘관운장 청룡연월도 희롱하듯’ ‘장비만큼 장사다.’ ‘조조의 잔꾀…’ ‘미련하기가 여포 같다.’ 등등. 『삼국지』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늘 생활 속에서 함께했기에 그들의 이름이 내겐 이웃처럼 친근했다.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탄과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책을 잡은 순간부터 사나흘 정도를 내리읽었는데, 그때는 다음날 또 『삼국지』를 읽기 위해서 새벽녘에 두세 시간 정도 잠을 잤을 뿐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독(一讀)이 끝나고, 곧바로 인물과 사건·전투 등을 복기하느라 한 번 더 읽었다. 이렇게 연이어 몇 번을 읽고 난 뒤에야 개요와 등장인물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졌다. 『삼국지』는 워낙 방대한 스케일과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읽을 때마다 전혀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던져준다는 것이다. 청나라 말기 이종오 선생이 ‘후흑학’을 개진하게 된 것도 바로 『삼국지』를 통해 영감을 얻은 때문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이 책은 보는 관점과 해석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펼쳐준다. 실로 오랜만에 『삼국지』를 다시 읽었다. 원래 독서를 할 때 한 주제를 잡으면 폭풍처럼 몰아쳐 읽는 습관 때문에 어떤 책이든 번역본은 국내에 나온 건 대충 다 찾아 읽고 관련 해설서까지 읽는다. 이에 『삼국지』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시중에 나온 이문열·황석영·정비석 선생님 등 여러 작가들의 소설을 한꺼번에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느끼며,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 놀라운 경험 때문에 나는 내처 『정사 삼국지』부터 등장인물들의 평전, 삼국지에 대한 각종 해설서 등을 폭풍처럼 읽어댔다. 다시 읽은 『삼국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던 시절의 삼국지는 그 역사와 주인공들이 엮어내는 스토리의 힘에 이끌려 정신없이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 비판적이었던 20대에는 중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촉한정통론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며 유비의 뻔뻔함에 넌더리를 내면서 읽었다. 그런데 20년 이상 조직 생활에 이골이 난 사회인의 눈으로 다시 읽은 삼국지는 바로 ‘조직인으로서의 내 조직 인생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권력을 놓고 경쟁하고,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친구도 되고 배신도 하며, 땅을 빼앗고, 나라를 세우고, 명분을 만들고, 충동질하고, 이익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전투에 나서고, 이간하고, 계책으로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고,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이의 목을 베고…. 이런 일들은 무대와 사용하는 무기, 그리고 방법은 달라졌지만 공명(功名)을 다투는 인간 세상에선 지금도 늘 예사로 벌어진다. 어느 조직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이 ‘창세기’처럼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들 속에 모두 숨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했고, 등장인물들이 친근했고, 그들의 성패와 생사의 이유에 깊이 공감했다. 『삼국지』는 이렇게 내겐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 나와 내 동료들의 이야기, 공명을 다투는 나의 공적인 삶의 모습으로 확 다가왔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인생으로서의 『삼국지』를 써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시중엔 이미 너무나 많은 『삼국지』 번역 및 평역본들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 문학가들이 쓴 것이어서 ‘조직 인생’으로서의 등장인물들의 게임과 거래 방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아쉬웠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사회에 나가려는 사회생활 초년병이나 사회생활에서 부대끼는 직장인들에겐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와 다른 인간들의 처세를 이해할 수 있는 바이블과 같은 책이다. 그런데 기존에 나온 소설 『삼국지』들은 조직에서의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가 조금 떨어진 듯 보인다. 서주 태수인 도겸이 용병 대장 유비에게 서주를 맡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도 집도 절도 없는 유비가 끝까지 고사하는 이유, 유비가 여포를 서주로 끌어들이는 이유, 조조에게 관도대전의 결정적 승리를 가져다 준 인물인 허유가 조조 부하의 손에 목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인의예지(仁義禮智) 차원이 아니라 조직의 운영과 처세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에 나는 사건의 전개와 인과관계, 인물들의 처세, 야심가들의 명분과 실행 등을 공적 관계와 조직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하여 조직 생활과 인물들의 처세를 이해하는 바이블로서 『삼국지』로 재가공해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이 『삼국지』는 다른 소설들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할 것이다. 일단 스토리라인과 에피소드 등은 기존 『삼국지』를 따랐으나 그 주제는 좀 달라졌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내 인간의 삶과 처세, 그것이 바로 나의 주제다. 그래서 권모술수는 훨씬 더 적나라하고 교활하게 묘사했지만 그 상황의 정당성을 부여해 그렸고, 계책들의 이면에 숨은 인간들의 역학관계에 대한 해석을 보태놓았다. 어느 조직이든지 구성원들을 분류해 보면 ‘주군’, ‘모사’, ‘장수’ 세 부류로 나뉜다. 주군은 조직의 리더이며 권력의 중심이다. 모사는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세우는 머리 역할을 한다. 장수는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이익을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삼국지』에는 전형적 모델이 될 만한 수많은 주군·모사·장수들이 등장하여 수없이 많은 역학 관계를 만들어낸다. 다른 일반 소설들이 개인의 성장 스토리와 연애담부터 소소한 갈등과 고민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며 전인적인 인간을 다룬다면, 『삼국지』는 오로지 조직 내 인간의 행동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인간의 조직 인생과 처세를 분석하고 다루는 데는 이만한 작품을 만나기 힘들다. 청대 역사학자 장학성(章學誠)이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는 열에 일곱은 사실이요, 셋은 허구”라고 평한 이래, 많은 평역자들과 해설서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어차피 각색하는 것이니 역사적 맥락에 비슷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후한 말(後漢末)의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기존 『삼국지』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한나라 역사에서 지나치게 축약된 것은 풀어서 설명하는 등의 일부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역사를 바로 밝히는 것은 어차피 내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이 작업으로 기운을 빼지 않으려 했다. 이 소설은 전체 스토리라인은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기존의 모종강본 『삼국지』를 따랐고, 일부 스토리는 창작하고, 일부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삼국지 관련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등 편작(編作)한 것이다. 사실 소설 『삼국지』는 정사(正史)를 토대로 지어졌지만 정사(正史)를 왜곡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는 너무 간략하고, 어떤 부분에선 다소 이해되지 않는 기술도 있어 이 역시 왜곡되지 않았다고 자신하긴 어렵다. 한 예로 복황후를 끌어내 살해한 화흠의 경우 『정사』에선 도량 넓은 성인군자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정사』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었다. 또 어차피 1800여 년 전의 일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 진실을……. 그래서 소설이라는 장르의 힘을 십분 활용해 극적인 재미와 효과를 살리는 다소 왜곡된 장면도 그대로 살렸다. 원래 인생이 그렇고, 소설이 그런 것처럼. 1800여 년 전의 역사의 앞뒤를 캐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기존의 『삼국지』와 조금 다른 체계를 가진다. 먼저 장(章)의 구성이 다르다. 기존 모종강본은 120장으로 구성돼 있으나 이는 내용에 따른 전개라기보다는 분량에 따라 나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사건의 전개를 중심으로 장을 재구성하였다. 또 오주 손권의 죽음까지를 한나라가 나뉘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룬 삼국시대로 일단락하고, 그 이후 진나라에 의해 통일되기까지의 과정은 크게 한 장으로 다루면서 중간 중간 소제목으로 처리하였다. 둘째로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기존의 고전문학 번역본과는 언어가 조금 다르다. 앞서 번역 및 평역한 선생님들의 경우 중국고전의 어투와 매력을 살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하셨지만, 이 책에선 고전적 문체를 활용하면서도 현대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비전’이나 ‘효율’ 같은 영어 혹은 요즘 개념들로 설명하는 일도 흔하다. 사실 이 소설의 원작자인 나관중 선생도 원말명초의 분위기를 살려 편집했다. 예를 들어 황건적의 수괴 장각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비운의 천재로 묘사하고 있으나 한나라 때의 등용제도는 ‘효렴’이었다. 나관중 시대에나 있던 과거제도를 후한 말을 다루는 소설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실수라기보다는 당대인들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고전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시대정신에 맞추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때문에 언어의 사용을 편하게 했다. 그러니 원작 중국 고전의 세계에 심취하고 싶다면, 이 책은 적합하지 않다. 셋째로 원래 『삼국지』는 촉한정통론을 앞세우면서 한실부흥이나 춘추대의(春秋大義) 같은 명분에 따라서 인물들을 그리는 다소 계도적인 고전소설의 장르를 채택한다. 그러나 이 책은 유비를 중심인물로 책정하고 있으나 명분론과 권선징악의 고전적 계도 부분은 희석돼 있다. 다만 유비가 기존과는 다른 참신한 군벌(軍閥)을 지향하는 벤처기업으로 출범해 명분을 쌓고 나라를 세우는 창업·발전·수성·죽음의 과정을 경영이론과 인간의 역학 관계 등을 동원해 그려나가고 있다. 이 『삼국지』는 고전을 통해 조직에서의 처세와 그 이면을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둔 재해석 작업의 일환이었다. 고전은 우리에게 배움과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래서 20여 년간 조직생활에 이골이 난 이 사람의 경험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세상에 나온 수많은『삼국지』에 또 다른 버전을 하나 보탰다는 데 개인적으로 의미를 둔다. 누군가 “삼국지는 남성들의 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남성뿐 아니라 여성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랫동안 남성들만 득시글거리는 조직에서 홍일점으로 살아왔던 내가 조직과 남성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웠던 책 중의 하나가 『삼국지』였다. 그동안 나는 사회에 진출한 알파걸 여성 후배들에게 조직세계를 이해하려면 『삼국지』를 읽으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여성 후배들과 『삼국지』를 잘 모르는 신세대 직장인들을 위해서 사건이나 전쟁의 전후 관계와 의미, 등장인물들의 관계 등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이해를 돕고자 했다.

여류 삼국지 2

삼국지는 읽는 나이대에 따라 느낌과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또 나이뿐 아니라 환경과 입장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교훈과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내가 처음 삼국지를 읽은 것은 학력고사가 끝난 직후였다. 하릴없이 방바닥 위를 뒹굴던 때였다. 사실 내 어린 시절엔 모든 어른들이 삼국지에 빗대 말하는 것을 즐겼다.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 ‘관운장 청룡연월도 희롱하듯’ ‘장비만큼 장사다.’ ‘조조의 잔꾀…’ ‘미련하기가 여포 같다.’ 등등. 『삼국지』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늘 생활 속에서 함께했기에 그들의 이름이 내겐 이웃처럼 친근했다.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탄과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책을 잡은 순간부터 사나흘 정도를 내리읽었는데, 그때는 다음날 또 『삼국지』를 읽기 위해서 새벽녘에 두세 시간 정도 잠을 잤을 뿐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독(一讀)이 끝나고, 곧바로 인물과 사건·전투 등을 복기하느라 한 번 더 읽었다. 이렇게 연이어 몇 번을 읽고 난 뒤에야 개요와 등장인물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졌다. 『삼국지』는 워낙 방대한 스케일과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읽을 때마다 전혀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던져준다는 것이다. 청나라 말기 이종오 선생이 ‘후흑학’을 개진하게 된 것도 바로 『삼국지』를 통해 영감을 얻은 때문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이 책은 보는 관점과 해석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펼쳐준다. 실로 오랜만에 『삼국지』를 다시 읽었다. 원래 독서를 할 때 한 주제를 잡으면 폭풍처럼 몰아쳐 읽는 습관 때문에 어떤 책이든 번역본은 국내에 나온 건 대충 다 찾아 읽고 관련 해설서까지 읽는다. 이에 『삼국지』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시중에 나온 이문열·황석영·정비석 선생님 등 여러 작가들의 소설을 한꺼번에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느끼며,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 놀라운 경험 때문에 나는 내처 『정사 삼국지』부터 등장인물들의 평전, 삼국지에 대한 각종 해설서 등을 폭풍처럼 읽어댔다. 다시 읽은 『삼국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던 시절의 삼국지는 그 역사와 주인공들이 엮어내는 스토리의 힘에 이끌려 정신없이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 비판적이었던 20대에는 중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촉한정통론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며 유비의 뻔뻔함에 넌더리를 내면서 읽었다. 그런데 20년 이상 조직 생활에 이골이 난 사회인의 눈으로 다시 읽은 삼국지는 바로 ‘조직인으로서의 내 조직 인생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권력을 놓고 경쟁하고,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친구도 되고 배신도 하며, 땅을 빼앗고, 나라를 세우고, 명분을 만들고, 충동질하고, 이익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전투에 나서고, 이간하고, 계책으로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고,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이의 목을 베고…. 이런 일들은 무대와 사용하는 무기, 그리고 방법은 달라졌지만 공명(功名)을 다투는 인간 세상에선 지금도 늘 예사로 벌어진다. 어느 조직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이 ‘창세기’처럼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들 속에 모두 숨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했고, 등장인물들이 친근했고, 그들의 성패와 생사의 이유에 깊이 공감했다. 『삼국지』는 이렇게 내겐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 나와 내 동료들의 이야기, 공명을 다투는 나의 공적인 삶의 모습으로 확 다가왔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인생으로서의 『삼국지』를 써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시중엔 이미 너무나 많은 『삼국지』 번역 및 평역본들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 문학가들이 쓴 것이어서 ‘조직 인생’으로서의 등장인물들의 게임과 거래 방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아쉬웠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사회에 나가려는 사회생활 초년병이나 사회생활에서 부대끼는 직장인들에겐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와 다른 인간들의 처세를 이해할 수 있는 바이블과 같은 책이다. 그런데 기존에 나온 소설 『삼국지』들은 조직에서의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가 조금 떨어진 듯 보인다. 서주 태수인 도겸이 용병 대장 유비에게 서주를 맡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도 집도 절도 없는 유비가 끝까지 고사하는 이유, 유비가 여포를 서주로 끌어들이는 이유, 조조에게 관도대전의 결정적 승리를 가져다 준 인물인 허유가 조조 부하의 손에 목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인의예지(仁義禮智) 차원이 아니라 조직의 운영과 처세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에 나는 사건의 전개와 인과관계, 인물들의 처세, 야심가들의 명분과 실행 등을 공적 관계와 조직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하여 조직 생활과 인물들의 처세를 이해하는 바이블로서 『삼국지』로 재가공해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이 『삼국지』는 다른 소설들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할 것이다. 일단 스토리라인과 에피소드 등은 기존 『삼국지』를 따랐으나 그 주제는 좀 달라졌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내 인간의 삶과 처세, 그것이 바로 나의 주제다. 그래서 권모술수는 훨씬 더 적나라하고 교활하게 묘사했지만 그 상황의 정당성을 부여해 그렸고, 계책들의 이면에 숨은 인간들의 역학관계에 대한 해석을 보태놓았다. 어느 조직이든지 구성원들을 분류해 보면 ‘주군’, ‘모사’, ‘장수’ 세 부류로 나뉜다. 주군은 조직의 리더이며 권력의 중심이다. 모사는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세우는 머리 역할을 한다. 장수는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이익을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삼국지』에는 전형적 모델이 될 만한 수많은 주군·모사·장수들이 등장하여 수없이 많은 역학 관계를 만들어낸다. 다른 일반 소설들이 개인의 성장 스토리와 연애담부터 소소한 갈등과 고민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며 전인적인 인간을 다룬다면, 『삼국지』는 오로지 조직 내 인간의 행동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인간의 조직 인생과 처세를 분석하고 다루는 데는 이만한 작품을 만나기 힘들다. 청대 역사학자 장학성(章學誠)이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는 열에 일곱은 사실이요, 셋은 허구”라고 평한 이래, 많은 평역자들과 해설서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어차피 각색하는 것이니 역사적 맥락에 비슷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후한 말(後漢末)의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기존 『삼국지』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한나라 역사에서 지나치게 축약된 것은 풀어서 설명하는 등의 일부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역사를 바로 밝히는 것은 어차피 내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이 작업으로 기운을 빼지 않으려 했다. 이 소설은 전체 스토리라인은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기존의 모종강본 『삼국지』를 따랐고, 일부 스토리는 창작하고, 일부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삼국지 관련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등 편작(編作)한 것이다. 사실 소설 『삼국지』는 정사(正史)를 토대로 지어졌지만 정사(正史)를 왜곡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는 너무 간략하고, 어떤 부분에선 다소 이해되지 않는 기술도 있어 이 역시 왜곡되지 않았다고 자신하긴 어렵다. 한 예로 복황후를 끌어내 살해한 화흠의 경우 『정사』에선 도량 넓은 성인군자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정사』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었다. 또 어차피 1800여 년 전의 일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 진실을……. 그래서 소설이라는 장르의 힘을 십분 활용해 극적인 재미와 효과를 살리는 다소 왜곡된 장면도 그대로 살렸다. 원래 인생이 그렇고, 소설이 그런 것처럼. 1800여 년 전의 역사의 앞뒤를 캐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기존의 『삼국지』와 조금 다른 체계를 가진다. 먼저 장(章)의 구성이 다르다. 기존 모종강본은 120장으로 구성돼 있으나 이는 내용에 따른 전개라기보다는 분량에 따라 나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사건의 전개를 중심으로 장을 재구성하였다. 또 오주 손권의 죽음까지를 한나라가 나뉘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룬 삼국시대로 일단락하고, 그 이후 진나라에 의해 통일되기까지의 과정은 크게 한 장으로 다루면서 중간 중간 소제목으로 처리하였다. 둘째로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기존의 고전문학 번역본과는 언어가 조금 다르다. 앞서 번역 및 평역한 선생님들의 경우 중국고전의 어투와 매력을 살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하셨지만, 이 책에선 고전적 문체를 활용하면서도 현대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비전’이나 ‘효율’ 같은 영어 혹은 요즘 개념들로 설명하는 일도 흔하다. 사실 이 소설의 원작자인 나관중 선생도 원말명초의 분위기를 살려 편집했다. 예를 들어 황건적의 수괴 장각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비운의 천재로 묘사하고 있으나 한나라 때의 등용제도는 ‘효렴’이었다. 나관중 시대에나 있던 과거제도를 후한 말을 다루는 소설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실수라기보다는 당대인들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고전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시대정신에 맞추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때문에 언어의 사용을 편하게 했다. 그러니 원작 중국 고전의 세계에 심취하고 싶다면, 이 책은 적합하지 않다. 셋째로 원래 『삼국지』는 촉한정통론을 앞세우면서 한실부흥이나 춘추대의(春秋大義) 같은 명분에 따라서 인물들을 그리는 다소 계도적인 고전소설의 장르를 채택한다. 그러나 이 책은 유비를 중심인물로 책정하고 있으나 명분론과 권선징악의 고전적 계도 부분은 희석돼 있다. 다만 유비가 기존과는 다른 참신한 군벌(軍閥)을 지향하는 벤처기업으로 출범해 명분을 쌓고 나라를 세우는 창업·발전·수성·죽음의 과정을 경영이론과 인간의 역학 관계 등을 동원해 그려나가고 있다. 이 『삼국지』는 고전을 통해 조직에서의 처세와 그 이면을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둔 재해석 작업의 일환이었다. 고전은 우리에게 배움과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래서 20여 년간 조직생활에 이골이 난 이 사람의 경험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세상에 나온 수많은『삼국지』에 또 다른 버전을 하나 보탰다는 데 개인적으로 의미를 둔다. 누군가 “삼국지는 남성들의 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남성뿐 아니라 여성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랫동안 남성들만 득시글거리는 조직에서 홍일점으로 살아왔던 내가 조직과 남성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웠던 책 중의 하나가 『삼국지』였다. 그동안 나는 사회에 진출한 알파걸 여성 후배들에게 조직세계를 이해하려면 『삼국지』를 읽으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여성 후배들과 『삼국지』를 잘 모르는 신세대 직장인들을 위해서 사건이나 전쟁의 전후 관계와 의미, 등장인물들의 관계 등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이해를 돕고자 했다.

여류 삼국지 3

삼국지는 읽는 나이대에 따라 느낌과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또 나이뿐 아니라 환경과 입장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교훈과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내가 처음 삼국지를 읽은 것은 학력고사가 끝난 직후였다. 하릴없이 방바닥 위를 뒹굴던 때였다. 사실 내 어린 시절엔 모든 어른들이 삼국지에 빗대 말하는 것을 즐겼다.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 ‘관운장 청룡연월도 희롱하듯’ ‘장비만큼 장사다.’ ‘조조의 잔꾀…’ ‘미련하기가 여포 같다.’ 등등. 『삼국지』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늘 생활 속에서 함께했기에 그들의 이름이 내겐 이웃처럼 친근했다.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탄과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책을 잡은 순간부터 사나흘 정도를 내리읽었는데, 그때는 다음날 또 『삼국지』를 읽기 위해서 새벽녘에 두세 시간 정도 잠을 잤을 뿐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독(一讀)이 끝나고, 곧바로 인물과 사건·전투 등을 복기하느라 한 번 더 읽었다. 이렇게 연이어 몇 번을 읽고 난 뒤에야 개요와 등장인물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졌다. 『삼국지』는 워낙 방대한 스케일과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읽을 때마다 전혀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던져준다는 것이다. 청나라 말기 이종오 선생이 ‘후흑학’을 개진하게 된 것도 바로 『삼국지』를 통해 영감을 얻은 때문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이 책은 보는 관점과 해석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펼쳐준다. 실로 오랜만에 『삼국지』를 다시 읽었다. 원래 독서를 할 때 한 주제를 잡으면 폭풍처럼 몰아쳐 읽는 습관 때문에 어떤 책이든 번역본은 국내에 나온 건 대충 다 찾아 읽고 관련 해설서까지 읽는다. 이에 『삼국지』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시중에 나온 이문열·황석영·정비석 선생님 등 여러 작가들의 소설을 한꺼번에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느끼며,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 놀라운 경험 때문에 나는 내처 『정사 삼국지』부터 등장인물들의 평전, 삼국지에 대한 각종 해설서 등을 폭풍처럼 읽어댔다. 다시 읽은 『삼국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던 시절의 삼국지는 그 역사와 주인공들이 엮어내는 스토리의 힘에 이끌려 정신없이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 비판적이었던 20대에는 중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촉한정통론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며 유비의 뻔뻔함에 넌더리를 내면서 읽었다. 그런데 20년 이상 조직 생활에 이골이 난 사회인의 눈으로 다시 읽은 삼국지는 바로 ‘조직인으로서의 내 조직 인생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권력을 놓고 경쟁하고,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친구도 되고 배신도 하며, 땅을 빼앗고, 나라를 세우고, 명분을 만들고, 충동질하고, 이익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전투에 나서고, 이간하고, 계책으로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고,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이의 목을 베고…. 이런 일들은 무대와 사용하는 무기, 그리고 방법은 달라졌지만 공명(功名)을 다투는 인간 세상에선 지금도 늘 예사로 벌어진다. 어느 조직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이 ‘창세기’처럼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들 속에 모두 숨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했고, 등장인물들이 친근했고, 그들의 성패와 생사의 이유에 깊이 공감했다. 『삼국지』는 이렇게 내겐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 나와 내 동료들의 이야기, 공명을 다투는 나의 공적인 삶의 모습으로 확 다가왔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인생으로서의 『삼국지』를 써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시중엔 이미 너무나 많은 『삼국지』 번역 및 평역본들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 문학가들이 쓴 것이어서 ‘조직 인생’으로서의 등장인물들의 게임과 거래 방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아쉬웠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사회에 나가려는 사회생활 초년병이나 사회생활에서 부대끼는 직장인들에겐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와 다른 인간들의 처세를 이해할 수 있는 바이블과 같은 책이다. 그런데 기존에 나온 소설 『삼국지』들은 조직에서의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가 조금 떨어진 듯 보인다. 서주 태수인 도겸이 용병 대장 유비에게 서주를 맡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도 집도 절도 없는 유비가 끝까지 고사하는 이유, 유비가 여포를 서주로 끌어들이는 이유, 조조에게 관도대전의 결정적 승리를 가져다 준 인물인 허유가 조조 부하의 손에 목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인의예지(仁義禮智) 차원이 아니라 조직의 운영과 처세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에 나는 사건의 전개와 인과관계, 인물들의 처세, 야심가들의 명분과 실행 등을 공적 관계와 조직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하여 조직 생활과 인물들의 처세를 이해하는 바이블로서 『삼국지』로 재가공해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이 『삼국지』는 다른 소설들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할 것이다. 일단 스토리라인과 에피소드 등은 기존 『삼국지』를 따랐으나 그 주제는 좀 달라졌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내 인간의 삶과 처세, 그것이 바로 나의 주제다. 그래서 권모술수는 훨씬 더 적나라하고 교활하게 묘사했지만 그 상황의 정당성을 부여해 그렸고, 계책들의 이면에 숨은 인간들의 역학관계에 대한 해석을 보태놓았다. 어느 조직이든지 구성원들을 분류해 보면 ‘주군’, ‘모사’, ‘장수’ 세 부류로 나뉜다. 주군은 조직의 리더이며 권력의 중심이다. 모사는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세우는 머리 역할을 한다. 장수는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이익을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삼국지』에는 전형적 모델이 될 만한 수많은 주군·모사·장수들이 등장하여 수없이 많은 역학 관계를 만들어낸다. 다른 일반 소설들이 개인의 성장 스토리와 연애담부터 소소한 갈등과 고민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며 전인적인 인간을 다룬다면, 『삼국지』는 오로지 조직 내 인간의 행동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인간의 조직 인생과 처세를 분석하고 다루는 데는 이만한 작품을 만나기 힘들다. 청대 역사학자 장학성(章學誠)이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는 열에 일곱은 사실이요, 셋은 허구”라고 평한 이래, 많은 평역자들과 해설서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어차피 각색하는 것이니 역사적 맥락에 비슷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후한 말(後漢末)의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기존 『삼국지』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한나라 역사에서 지나치게 축약된 것은 풀어서 설명하는 등의 일부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역사를 바로 밝히는 것은 어차피 내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이 작업으로 기운을 빼지 않으려 했다. 이 소설은 전체 스토리라인은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기존의 모종강본 『삼국지』를 따랐고, 일부 스토리는 창작하고, 일부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삼국지 관련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등 편작(編作)한 것이다. 사실 소설 『삼국지』는 정사(正史)를 토대로 지어졌지만 정사(正史)를 왜곡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는 너무 간략하고, 어떤 부분에선 다소 이해되지 않는 기술도 있어 이 역시 왜곡되지 않았다고 자신하긴 어렵다. 한 예로 복황후를 끌어내 살해한 화흠의 경우 『정사』에선 도량 넓은 성인군자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정사』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었다. 또 어차피 1800여 년 전의 일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 진실을……. 그래서 소설이라는 장르의 힘을 십분 활용해 극적인 재미와 효과를 살리는 다소 왜곡된 장면도 그대로 살렸다. 원래 인생이 그렇고, 소설이 그런 것처럼. 1800여 년 전의 역사의 앞뒤를 캐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기존의 『삼국지』와 조금 다른 체계를 가진다. 먼저 장(章)의 구성이 다르다. 기존 모종강본은 120장으로 구성돼 있으나 이는 내용에 따른 전개라기보다는 분량에 따라 나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사건의 전개를 중심으로 장을 재구성하였다. 또 오주 손권의 죽음까지를 한나라가 나뉘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룬 삼국시대로 일단락하고, 그 이후 진나라에 의해 통일되기까지의 과정은 크게 한 장으로 다루면서 중간 중간 소제목으로 처리하였다. 둘째로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기존의 고전문학 번역본과는 언어가 조금 다르다. 앞서 번역 및 평역한 선생님들의 경우 중국고전의 어투와 매력을 살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하셨지만, 이 책에선 고전적 문체를 활용하면서도 현대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비전’이나 ‘효율’ 같은 영어 혹은 요즘 개념들로 설명하는 일도 흔하다. 사실 이 소설의 원작자인 나관중 선생도 원말명초의 분위기를 살려 편집했다. 예를 들어 황건적의 수괴 장각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비운의 천재로 묘사하고 있으나 한나라 때의 등용제도는 ‘효렴’이었다. 나관중 시대에나 있던 과거제도를 후한 말을 다루는 소설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실수라기보다는 당대인들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고전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시대정신에 맞추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때문에 언어의 사용을 편하게 했다. 그러니 원작 중국 고전의 세계에 심취하고 싶다면, 이 책은 적합하지 않다. 셋째로 원래 『삼국지』는 촉한정통론을 앞세우면서 한실부흥이나 춘추대의(春秋大義) 같은 명분에 따라서 인물들을 그리는 다소 계도적인 고전소설의 장르를 채택한다. 그러나 이 책은 유비를 중심인물로 책정하고 있으나 명분론과 권선징악의 고전적 계도 부분은 희석돼 있다. 다만 유비가 기존과는 다른 참신한 군벌(軍閥)을 지향하는 벤처기업으로 출범해 명분을 쌓고 나라를 세우는 창업·발전·수성·죽음의 과정을 경영이론과 인간의 역학 관계 등을 동원해 그려나가고 있다. 이 『삼국지』는 고전을 통해 조직에서의 처세와 그 이면을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둔 재해석 작업의 일환이었다. 고전은 우리에게 배움과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래서 20여 년간 조직생활에 이골이 난 이 사람의 경험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세상에 나온 수많은『삼국지』에 또 다른 버전을 하나 보탰다는 데 개인적으로 의미를 둔다. 누군가 “삼국지는 남성들의 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남성뿐 아니라 여성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랫동안 남성들만 득시글거리는 조직에서 홍일점으로 살아왔던 내가 조직과 남성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웠던 책 중의 하나가 『삼국지』였다. 그동안 나는 사회에 진출한 알파걸 여성 후배들에게 조직세계를 이해하려면 『삼국지』를 읽으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여성 후배들과 『삼국지』를 잘 모르는 신세대 직장인들을 위해서 사건이나 전쟁의 전후 관계와 의미, 등장인물들의 관계 등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이해를 돕고자 했다.

여류 삼국지 4

삼국지는 읽는 나이대에 따라 느낌과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또 나이뿐 아니라 환경과 입장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교훈과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내가 처음 삼국지를 읽은 것은 학력고사가 끝난 직후였다. 하릴없이 방바닥 위를 뒹굴던 때였다. 사실 내 어린 시절엔 모든 어른들이 삼국지에 빗대 말하는 것을 즐겼다.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 ‘관운장 청룡연월도 희롱하듯’ ‘장비만큼 장사다.’ ‘조조의 잔꾀…’ ‘미련하기가 여포 같다.’ 등등. 『삼국지』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늘 생활 속에서 함께했기에 그들의 이름이 내겐 이웃처럼 친근했다.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탄과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책을 잡은 순간부터 사나흘 정도를 내리읽었는데, 그때는 다음날 또 『삼국지』를 읽기 위해서 새벽녘에 두세 시간 정도 잠을 잤을 뿐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독(一讀)이 끝나고, 곧바로 인물과 사건·전투 등을 복기하느라 한 번 더 읽었다. 이렇게 연이어 몇 번을 읽고 난 뒤에야 개요와 등장인물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졌다. 『삼국지』는 워낙 방대한 스케일과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읽을 때마다 전혀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던져준다는 것이다. 청나라 말기 이종오 선생이 ‘후흑학’을 개진하게 된 것도 바로 『삼국지』를 통해 영감을 얻은 때문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이 책은 보는 관점과 해석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펼쳐준다. 실로 오랜만에 『삼국지』를 다시 읽었다. 원래 독서를 할 때 한 주제를 잡으면 폭풍처럼 몰아쳐 읽는 습관 때문에 어떤 책이든 번역본은 국내에 나온 건 대충 다 찾아 읽고 관련 해설서까지 읽는다. 이에 『삼국지』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시중에 나온 이문열·황석영·정비석 선생님 등 여러 작가들의 소설을 한꺼번에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느끼며,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 놀라운 경험 때문에 나는 내처 『정사 삼국지』부터 등장인물들의 평전, 삼국지에 대한 각종 해설서 등을 폭풍처럼 읽어댔다. 다시 읽은 『삼국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던 시절의 삼국지는 그 역사와 주인공들이 엮어내는 스토리의 힘에 이끌려 정신없이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 비판적이었던 20대에는 중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촉한정통론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며 유비의 뻔뻔함에 넌더리를 내면서 읽었다. 그런데 20년 이상 조직 생활에 이골이 난 사회인의 눈으로 다시 읽은 삼국지는 바로 ‘조직인으로서의 내 조직 인생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권력을 놓고 경쟁하고,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친구도 되고 배신도 하며, 땅을 빼앗고, 나라를 세우고, 명분을 만들고, 충동질하고, 이익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전투에 나서고, 이간하고, 계책으로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고,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이의 목을 베고…. 이런 일들은 무대와 사용하는 무기, 그리고 방법은 달라졌지만 공명(功名)을 다투는 인간 세상에선 지금도 늘 예사로 벌어진다. 어느 조직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이 ‘창세기’처럼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들 속에 모두 숨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했고, 등장인물들이 친근했고, 그들의 성패와 생사의 이유에 깊이 공감했다. 『삼국지』는 이렇게 내겐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 나와 내 동료들의 이야기, 공명을 다투는 나의 공적인 삶의 모습으로 확 다가왔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인생으로서의 『삼국지』를 써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시중엔 이미 너무나 많은 『삼국지』 번역 및 평역본들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 문학가들이 쓴 것이어서 ‘조직 인생’으로서의 등장인물들의 게임과 거래 방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아쉬웠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사회에 나가려는 사회생활 초년병이나 사회생활에서 부대끼는 직장인들에겐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와 다른 인간들의 처세를 이해할 수 있는 바이블과 같은 책이다. 그런데 기존에 나온 소설 『삼국지』들은 조직에서의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가 조금 떨어진 듯 보인다. 서주 태수인 도겸이 용병 대장 유비에게 서주를 맡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도 집도 절도 없는 유비가 끝까지 고사하는 이유, 유비가 여포를 서주로 끌어들이는 이유, 조조에게 관도대전의 결정적 승리를 가져다 준 인물인 허유가 조조 부하의 손에 목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인의예지(仁義禮智) 차원이 아니라 조직의 운영과 처세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에 나는 사건의 전개와 인과관계, 인물들의 처세, 야심가들의 명분과 실행 등을 공적 관계와 조직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하여 조직 생활과 인물들의 처세를 이해하는 바이블로서 『삼국지』로 재가공해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이 『삼국지』는 다른 소설들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할 것이다. 일단 스토리라인과 에피소드 등은 기존 『삼국지』를 따랐으나 그 주제는 좀 달라졌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내 인간의 삶과 처세, 그것이 바로 나의 주제다. 그래서 권모술수는 훨씬 더 적나라하고 교활하게 묘사했지만 그 상황의 정당성을 부여해 그렸고, 계책들의 이면에 숨은 인간들의 역학관계에 대한 해석을 보태놓았다. 어느 조직이든지 구성원들을 분류해 보면 ‘주군’, ‘모사’, ‘장수’ 세 부류로 나뉜다. 주군은 조직의 리더이며 권력의 중심이다. 모사는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세우는 머리 역할을 한다. 장수는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이익을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삼국지』에는 전형적 모델이 될 만한 수많은 주군·모사·장수들이 등장하여 수없이 많은 역학 관계를 만들어낸다. 다른 일반 소설들이 개인의 성장 스토리와 연애담부터 소소한 갈등과 고민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며 전인적인 인간을 다룬다면, 『삼국지』는 오로지 조직 내 인간의 행동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인간의 조직 인생과 처세를 분석하고 다루는 데는 이만한 작품을 만나기 힘들다. 청대 역사학자 장학성(章學誠)이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는 열에 일곱은 사실이요, 셋은 허구”라고 평한 이래, 많은 평역자들과 해설서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어차피 각색하는 것이니 역사적 맥락에 비슷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후한 말(後漢末)의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기존 『삼국지』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한나라 역사에서 지나치게 축약된 것은 풀어서 설명하는 등의 일부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역사를 바로 밝히는 것은 어차피 내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이 작업으로 기운을 빼지 않으려 했다. 이 소설은 전체 스토리라인은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기존의 모종강본 『삼국지』를 따랐고, 일부 스토리는 창작하고, 일부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삼국지 관련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등 편작(編作)한 것이다. 사실 소설 『삼국지』는 정사(正史)를 토대로 지어졌지만 정사(正史)를 왜곡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는 너무 간략하고, 어떤 부분에선 다소 이해되지 않는 기술도 있어 이 역시 왜곡되지 않았다고 자신하긴 어렵다. 한 예로 복황후를 끌어내 살해한 화흠의 경우 『정사』에선 도량 넓은 성인군자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정사』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었다. 또 어차피 1800여 년 전의 일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 진실을……. 그래서 소설이라는 장르의 힘을 십분 활용해 극적인 재미와 효과를 살리는 다소 왜곡된 장면도 그대로 살렸다. 원래 인생이 그렇고, 소설이 그런 것처럼. 1800여 년 전의 역사의 앞뒤를 캐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기존의 『삼국지』와 조금 다른 체계를 가진다. 먼저 장(章)의 구성이 다르다. 기존 모종강본은 120장으로 구성돼 있으나 이는 내용에 따른 전개라기보다는 분량에 따라 나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사건의 전개를 중심으로 장을 재구성하였다. 또 오주 손권의 죽음까지를 한나라가 나뉘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룬 삼국시대로 일단락하고, 그 이후 진나라에 의해 통일되기까지의 과정은 크게 한 장으로 다루면서 중간 중간 소제목으로 처리하였다. 둘째로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기존의 고전문학 번역본과는 언어가 조금 다르다. 앞서 번역 및 평역한 선생님들의 경우 중국고전의 어투와 매력을 살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하셨지만, 이 책에선 고전적 문체를 활용하면서도 현대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비전’이나 ‘효율’ 같은 영어 혹은 요즘 개념들로 설명하는 일도 흔하다. 사실 이 소설의 원작자인 나관중 선생도 원말명초의 분위기를 살려 편집했다. 예를 들어 황건적의 수괴 장각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비운의 천재로 묘사하고 있으나 한나라 때의 등용제도는 ‘효렴’이었다. 나관중 시대에나 있던 과거제도를 후한 말을 다루는 소설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실수라기보다는 당대인들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고전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시대정신에 맞추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때문에 언어의 사용을 편하게 했다. 그러니 원작 중국 고전의 세계에 심취하고 싶다면, 이 책은 적합하지 않다. 셋째로 원래 『삼국지』는 촉한정통론을 앞세우면서 한실부흥이나 춘추대의(春秋大義) 같은 명분에 따라서 인물들을 그리는 다소 계도적인 고전소설의 장르를 채택한다. 그러나 이 책은 유비를 중심인물로 책정하고 있으나 명분론과 권선징악의 고전적 계도 부분은 희석돼 있다. 다만 유비가 기존과는 다른 참신한 군벌(軍閥)을 지향하는 벤처기업으로 출범해 명분을 쌓고 나라를 세우는 창업·발전·수성·죽음의 과정을 경영이론과 인간의 역학 관계 등을 동원해 그려나가고 있다. 이 『삼국지』는 고전을 통해 조직에서의 처세와 그 이면을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둔 재해석 작업의 일환이었다. 고전은 우리에게 배움과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래서 20여 년간 조직생활에 이골이 난 이 사람의 경험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세상에 나온 수많은『삼국지』에 또 다른 버전을 하나 보탰다는 데 개인적으로 의미를 둔다. 누군가 “삼국지는 남성들의 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남성뿐 아니라 여성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랫동안 남성들만 득시글거리는 조직에서 홍일점으로 살아왔던 내가 조직과 남성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웠던 책 중의 하나가 『삼국지』였다. 그동안 나는 사회에 진출한 알파걸 여성 후배들에게 조직세계를 이해하려면 『삼국지』를 읽으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여성 후배들과 『삼국지』를 잘 모르는 신세대 직장인들을 위해서 사건이나 전쟁의 전후 관계와 의미, 등장인물들의 관계 등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이해를 돕고자 했다.

여류 삼국지 5

삼국지는 읽는 나이대에 따라 느낌과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또 나이뿐 아니라 환경과 입장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교훈과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내가 처음 삼국지를 읽은 것은 학력고사가 끝난 직후였다. 하릴없이 방바닥 위를 뒹굴던 때였다. 사실 내 어린 시절엔 모든 어른들이 삼국지에 빗대 말하는 것을 즐겼다.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 ‘관운장 청룡연월도 희롱하듯’ ‘장비만큼 장사다.’ ‘조조의 잔꾀…’ ‘미련하기가 여포 같다.’ 등등. 『삼국지』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늘 생활 속에서 함께했기에 그들의 이름이 내겐 이웃처럼 친근했다.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탄과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책을 잡은 순간부터 사나흘 정도를 내리읽었는데, 그때는 다음날 또 『삼국지』를 읽기 위해서 새벽녘에 두세 시간 정도 잠을 잤을 뿐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독(一讀)이 끝나고, 곧바로 인물과 사건·전투 등을 복기하느라 한 번 더 읽었다. 이렇게 연이어 몇 번을 읽고 난 뒤에야 개요와 등장인물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졌다. 『삼국지』는 워낙 방대한 스케일과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읽을 때마다 전혀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던져준다는 것이다. 청나라 말기 이종오 선생이 ‘후흑학’을 개진하게 된 것도 바로 『삼국지』를 통해 영감을 얻은 때문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이 책은 보는 관점과 해석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펼쳐준다. 실로 오랜만에 『삼국지』를 다시 읽었다. 원래 독서를 할 때 한 주제를 잡으면 폭풍처럼 몰아쳐 읽는 습관 때문에 어떤 책이든 번역본은 국내에 나온 건 대충 다 찾아 읽고 관련 해설서까지 읽는다. 이에 『삼국지』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시중에 나온 이문열·황석영·정비석 선생님 등 여러 작가들의 소설을 한꺼번에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느끼며,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 놀라운 경험 때문에 나는 내처 『정사 삼국지』부터 등장인물들의 평전, 삼국지에 대한 각종 해설서 등을 폭풍처럼 읽어댔다. 다시 읽은 『삼국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던 시절의 삼국지는 그 역사와 주인공들이 엮어내는 스토리의 힘에 이끌려 정신없이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 비판적이었던 20대에는 중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촉한정통론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며 유비의 뻔뻔함에 넌더리를 내면서 읽었다. 그런데 20년 이상 조직 생활에 이골이 난 사회인의 눈으로 다시 읽은 삼국지는 바로 ‘조직인으로서의 내 조직 인생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권력을 놓고 경쟁하고,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친구도 되고 배신도 하며, 땅을 빼앗고, 나라를 세우고, 명분을 만들고, 충동질하고, 이익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전투에 나서고, 이간하고, 계책으로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고,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이의 목을 베고…. 이런 일들은 무대와 사용하는 무기, 그리고 방법은 달라졌지만 공명(功名)을 다투는 인간 세상에선 지금도 늘 예사로 벌어진다. 어느 조직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이 ‘창세기’처럼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들 속에 모두 숨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했고, 등장인물들이 친근했고, 그들의 성패와 생사의 이유에 깊이 공감했다. 『삼국지』는 이렇게 내겐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 나와 내 동료들의 이야기, 공명을 다투는 나의 공적인 삶의 모습으로 확 다가왔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인생으로서의 『삼국지』를 써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시중엔 이미 너무나 많은 『삼국지』 번역 및 평역본들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 문학가들이 쓴 것이어서 ‘조직 인생’으로서의 등장인물들의 게임과 거래 방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아쉬웠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사회에 나가려는 사회생활 초년병이나 사회생활에서 부대끼는 직장인들에겐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와 다른 인간들의 처세를 이해할 수 있는 바이블과 같은 책이다. 그런데 기존에 나온 소설 『삼국지』들은 조직에서의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가 조금 떨어진 듯 보인다. 서주 태수인 도겸이 용병 대장 유비에게 서주를 맡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도 집도 절도 없는 유비가 끝까지 고사하는 이유, 유비가 여포를 서주로 끌어들이는 이유, 조조에게 관도대전의 결정적 승리를 가져다 준 인물인 허유가 조조 부하의 손에 목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인의예지(仁義禮智) 차원이 아니라 조직의 운영과 처세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에 나는 사건의 전개와 인과관계, 인물들의 처세, 야심가들의 명분과 실행 등을 공적 관계와 조직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하여 조직 생활과 인물들의 처세를 이해하는 바이블로서 『삼국지』로 재가공해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이 『삼국지』는 다른 소설들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할 것이다. 일단 스토리라인과 에피소드 등은 기존 『삼국지』를 따랐으나 그 주제는 좀 달라졌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내 인간의 삶과 처세, 그것이 바로 나의 주제다. 그래서 권모술수는 훨씬 더 적나라하고 교활하게 묘사했지만 그 상황의 정당성을 부여해 그렸고, 계책들의 이면에 숨은 인간들의 역학관계에 대한 해석을 보태놓았다. 어느 조직이든지 구성원들을 분류해 보면 ‘주군’, ‘모사’, ‘장수’ 세 부류로 나뉜다. 주군은 조직의 리더이며 권력의 중심이다. 모사는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세우는 머리 역할을 한다. 장수는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이익을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삼국지』에는 전형적 모델이 될 만한 수많은 주군·모사·장수들이 등장하여 수없이 많은 역학 관계를 만들어낸다. 다른 일반 소설들이 개인의 성장 스토리와 연애담부터 소소한 갈등과 고민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며 전인적인 인간을 다룬다면, 『삼국지』는 오로지 조직 내 인간의 행동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인간의 조직 인생과 처세를 분석하고 다루는 데는 이만한 작품을 만나기 힘들다. 청대 역사학자 장학성(章學誠)이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는 열에 일곱은 사실이요, 셋은 허구”라고 평한 이래, 많은 평역자들과 해설서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어차피 각색하는 것이니 역사적 맥락에 비슷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후한 말(後漢末)의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기존 『삼국지』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한나라 역사에서 지나치게 축약된 것은 풀어서 설명하는 등의 일부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역사를 바로 밝히는 것은 어차피 내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이 작업으로 기운을 빼지 않으려 했다. 이 소설은 전체 스토리라인은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기존의 모종강본 『삼국지』를 따랐고, 일부 스토리는 창작하고, 일부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삼국지 관련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등 편작(編作)한 것이다. 사실 소설 『삼국지』는 정사(正史)를 토대로 지어졌지만 정사(正史)를 왜곡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는 너무 간략하고, 어떤 부분에선 다소 이해되지 않는 기술도 있어 이 역시 왜곡되지 않았다고 자신하긴 어렵다. 한 예로 복황후를 끌어내 살해한 화흠의 경우 『정사』에선 도량 넓은 성인군자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정사』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었다. 또 어차피 1800여 년 전의 일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 진실을……. 그래서 소설이라는 장르의 힘을 십분 활용해 극적인 재미와 효과를 살리는 다소 왜곡된 장면도 그대로 살렸다. 원래 인생이 그렇고, 소설이 그런 것처럼. 1800여 년 전의 역사의 앞뒤를 캐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기존의 『삼국지』와 조금 다른 체계를 가진다. 먼저 장(章)의 구성이 다르다. 기존 모종강본은 120장으로 구성돼 있으나 이는 내용에 따른 전개라기보다는 분량에 따라 나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사건의 전개를 중심으로 장을 재구성하였다. 또 오주 손권의 죽음까지를 한나라가 나뉘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룬 삼국시대로 일단락하고, 그 이후 진나라에 의해 통일되기까지의 과정은 크게 한 장으로 다루면서 중간 중간 소제목으로 처리하였다. 둘째로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기존의 고전문학 번역본과는 언어가 조금 다르다. 앞서 번역 및 평역한 선생님들의 경우 중국고전의 어투와 매력을 살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하셨지만, 이 책에선 고전적 문체를 활용하면서도 현대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비전’이나 ‘효율’ 같은 영어 혹은 요즘 개념들로 설명하는 일도 흔하다. 사실 이 소설의 원작자인 나관중 선생도 원말명초의 분위기를 살려 편집했다. 예를 들어 황건적의 수괴 장각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비운의 천재로 묘사하고 있으나 한나라 때의 등용제도는 ‘효렴’이었다. 나관중 시대에나 있던 과거제도를 후한 말을 다루는 소설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실수라기보다는 당대인들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고전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시대정신에 맞추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때문에 언어의 사용을 편하게 했다. 그러니 원작 중국 고전의 세계에 심취하고 싶다면, 이 책은 적합하지 않다. 셋째로 원래 『삼국지』는 촉한정통론을 앞세우면서 한실부흥이나 춘추대의(春秋大義) 같은 명분에 따라서 인물들을 그리는 다소 계도적인 고전소설의 장르를 채택한다. 그러나 이 책은 유비를 중심인물로 책정하고 있으나 명분론과 권선징악의 고전적 계도 부분은 희석돼 있다. 다만 유비가 기존과는 다른 참신한 군벌(軍閥)을 지향하는 벤처기업으로 출범해 명분을 쌓고 나라를 세우는 창업·발전·수성·죽음의 과정을 경영이론과 인간의 역학 관계 등을 동원해 그려나가고 있다. 이 『삼국지』는 고전을 통해 조직에서의 처세와 그 이면을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둔 재해석 작업의 일환이었다. 고전은 우리에게 배움과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래서 20여 년간 조직생활에 이골이 난 이 사람의 경험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세상에 나온 수많은『삼국지』에 또 다른 버전을 하나 보탰다는 데 개인적으로 의미를 둔다. 누군가 “삼국지는 남성들의 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남성뿐 아니라 여성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랫동안 남성들만 득시글거리는 조직에서 홍일점으로 살아왔던 내가 조직과 남성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웠던 책 중의 하나가 『삼국지』였다. 그동안 나는 사회에 진출한 알파걸 여성 후배들에게 조직세계를 이해하려면 『삼국지』를 읽으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여성 후배들과 『삼국지』를 잘 모르는 신세대 직장인들을 위해서 사건이나 전쟁의 전후 관계와 의미, 등장인물들의 관계 등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이해를 돕고자 했다.

여류 삼국지 세트 - 전5권

삼국지는 읽는 나이대에 따라 느낌과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또 나이뿐 아니라 환경과 입장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교훈과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내가 처음 삼국지를 읽은 것은 학력고사가 끝난 직후였다. 하릴없이 방바닥 위를 뒹굴던 때였다. 사실 내 어린 시절엔 모든 어른들이 삼국지에 빗대 말하는 것을 즐겼다.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 ‘관운장 청룡연월도 희롱하듯’ ‘장비만큼 장사다.’ ‘조조의 잔꾀…’ ‘미련하기가 여포 같다.’ 등등. 『삼국지』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늘 생활 속에서 함께했기에 그들의 이름이 내겐 이웃처럼 친근했다.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탄과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책을 잡은 순간부터 사나흘 정도를 내리읽었는데, 그때는 다음날 또 『삼국지』를 읽기 위해서 새벽녘에 두세 시간 정도 잠을 잤을 뿐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독(一讀)이 끝나고, 곧바로 인물과 사건·전투 등을 복기하느라 한 번 더 읽었다. 이렇게 연이어 몇 번을 읽고 난 뒤에야 개요와 등장인물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졌다. 『삼국지』는 워낙 방대한 스케일과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읽을 때마다 전혀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던져준다는 것이다. 청나라 말기 이종오 선생이 ‘후흑학’을 개진하게 된 것도 바로 『삼국지』를 통해 영감을 얻은 때문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이 책은 보는 관점과 해석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펼쳐준다. 실로 오랜만에 『삼국지』를 다시 읽었다. 원래 독서를 할 때 한 주제를 잡으면 폭풍처럼 몰아쳐 읽는 습관 때문에 어떤 책이든 번역본은 국내에 나온 건 대충 다 찾아 읽고 관련 해설서까지 읽는다. 이에 『삼국지』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시중에 나온 이문열·황석영·정비석 선생님 등 여러 작가들의 소설을 한꺼번에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느끼며,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 놀라운 경험 때문에 나는 내처 『정사 삼국지』부터 등장인물들의 평전, 삼국지에 대한 각종 해설서 등을 폭풍처럼 읽어댔다. 다시 읽은 『삼국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던 시절의 삼국지는 그 역사와 주인공들이 엮어내는 스토리의 힘에 이끌려 정신없이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 비판적이었던 20대에는 중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촉한정통론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며 유비의 뻔뻔함에 넌더리를 내면서 읽었다. 그런데 20년 이상 조직 생활에 이골이 난 사회인의 눈으로 다시 읽은 삼국지는 바로 ‘조직인으로서의 내 조직 인생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권력을 놓고 경쟁하고,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친구도 되고 배신도 하며, 땅을 빼앗고, 나라를 세우고, 명분을 만들고, 충동질하고, 이익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전투에 나서고, 이간하고, 계책으로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고,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이의 목을 베고…. 이런 일들은 무대와 사용하는 무기, 그리고 방법은 달라졌지만 공명(功名)을 다투는 인간 세상에선 지금도 늘 예사로 벌어진다. 어느 조직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이 ‘창세기’처럼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들 속에 모두 숨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했고, 등장인물들이 친근했고, 그들의 성패와 생사의 이유에 깊이 공감했다. 『삼국지』는 이렇게 내겐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 나와 내 동료들의 이야기, 공명을 다투는 나의 공적인 삶의 모습으로 확 다가왔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인생으로서의 『삼국지』를 써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시중엔 이미 너무나 많은 『삼국지』 번역 및 평역본들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 문학가들이 쓴 것이어서 ‘조직 인생’으로서의 등장인물들의 게임과 거래 방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아쉬웠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사회에 나가려는 사회생활 초년병이나 사회생활에서 부대끼는 직장인들에겐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와 다른 인간들의 처세를 이해할 수 있는 바이블과 같은 책이다. 그런데 기존에 나온 소설 『삼국지』들은 조직에서의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가 조금 떨어진 듯 보인다. 서주 태수인 도겸이 용병 대장 유비에게 서주를 맡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도 집도 절도 없는 유비가 끝까지 고사하는 이유, 유비가 여포를 서주로 끌어들이는 이유, 조조에게 관도대전의 결정적 승리를 가져다 준 인물인 허유가 조조 부하의 손에 목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인의예지(仁義禮智) 차원이 아니라 조직의 운영과 처세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에 나는 사건의 전개와 인과관계, 인물들의 처세, 야심가들의 명분과 실행 등을 공적 관계와 조직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하여 조직 생활과 인물들의 처세를 이해하는 바이블로서 『삼국지』로 재가공해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이 『삼국지』는 다른 소설들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할 것이다. 일단 스토리라인과 에피소드 등은 기존 『삼국지』를 따랐으나 그 주제는 좀 달라졌다. 공명을 다투는 조직 내 인간의 삶과 처세, 그것이 바로 나의 주제다. 그래서 권모술수는 훨씬 더 적나라하고 교활하게 묘사했지만 그 상황의 정당성을 부여해 그렸고, 계책들의 이면에 숨은 인간들의 역학관계에 대한 해석을 보태놓았다. 어느 조직이든지 구성원들을 분류해 보면 ‘주군’, ‘모사’, ‘장수’ 세 부류로 나뉜다. 주군은 조직의 리더이며 권력의 중심이다. 모사는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세우는 머리 역할을 한다. 장수는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이익을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삼국지』에는 전형적 모델이 될 만한 수많은 주군·모사·장수들이 등장하여 수없이 많은 역학 관계를 만들어낸다. 다른 일반 소설들이 개인의 성장 스토리와 연애담부터 소소한 갈등과 고민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며 전인적인 인간을 다룬다면, 『삼국지』는 오로지 조직 내 인간의 행동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인간의 조직 인생과 처세를 분석하고 다루는 데는 이만한 작품을 만나기 힘들다. 청대 역사학자 장학성(章學誠)이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는 열에 일곱은 사실이요, 셋은 허구”라고 평한 이래, 많은 평역자들과 해설서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어차피 각색하는 것이니 역사적 맥락에 비슷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후한 말(後漢末)의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기존 『삼국지』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한나라 역사에서 지나치게 축약된 것은 풀어서 설명하는 등의 일부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역사를 바로 밝히는 것은 어차피 내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이 작업으로 기운을 빼지 않으려 했다. 이 소설은 전체 스토리라인은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기존의 모종강본 『삼국지』를 따랐고, 일부 스토리는 창작하고, 일부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삼국지 관련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등 편작(編作)한 것이다. 사실 소설 『삼국지』는 정사(正史)를 토대로 지어졌지만 정사(正史)를 왜곡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는 너무 간략하고, 어떤 부분에선 다소 이해되지 않는 기술도 있어 이 역시 왜곡되지 않았다고 자신하긴 어렵다. 한 예로 복황후를 끌어내 살해한 화흠의 경우 『정사』에선 도량 넓은 성인군자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정사』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었다. 또 어차피 1800여 년 전의 일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 진실을……. 그래서 소설이라는 장르의 힘을 십분 활용해 극적인 재미와 효과를 살리는 다소 왜곡된 장면도 그대로 살렸다. 원래 인생이 그렇고, 소설이 그런 것처럼. 1800여 년 전의 역사의 앞뒤를 캐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기존의 『삼국지』와 조금 다른 체계를 가진다. 먼저 장(章)의 구성이 다르다. 기존 모종강본은 120장으로 구성돼 있으나 이는 내용에 따른 전개라기보다는 분량에 따라 나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사건의 전개를 중심으로 장을 재구성하였다. 또 오주 손권의 죽음까지를 한나라가 나뉘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룬 삼국시대로 일단락하고, 그 이후 진나라에 의해 통일되기까지의 과정은 크게 한 장으로 다루면서 중간 중간 소제목으로 처리하였다. 둘째로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기존의 고전문학 번역본과는 언어가 조금 다르다. 앞서 번역 및 평역한 선생님들의 경우 중국고전의 어투와 매력을 살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하셨지만, 이 책에선 고전적 문체를 활용하면서도 현대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비전’이나 ‘효율’ 같은 영어 혹은 요즘 개념들로 설명하는 일도 흔하다. 사실 이 소설의 원작자인 나관중 선생도 원말명초의 분위기를 살려 편집했다. 예를 들어 황건적의 수괴 장각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비운의 천재로 묘사하고 있으나 한나라 때의 등용제도는 ‘효렴’이었다. 나관중 시대에나 있던 과거제도를 후한 말을 다루는 소설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실수라기보다는 당대인들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고전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시대정신에 맞추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때문에 언어의 사용을 편하게 했다. 그러니 원작 중국 고전의 세계에 심취하고 싶다면, 이 책은 적합하지 않다. 셋째로 원래 『삼국지』는 촉한정통론을 앞세우면서 한실부흥이나 춘추대의(春秋大義) 같은 명분에 따라서 인물들을 그리는 다소 계도적인 고전소설의 장르를 채택한다. 그러나 이 책은 유비를 중심인물로 책정하고 있으나 명분론과 권선징악의 고전적 계도 부분은 희석돼 있다. 다만 유비가 기존과는 다른 참신한 군벌(軍閥)을 지향하는 벤처기업으로 출범해 명분을 쌓고 나라를 세우는 창업·발전·수성·죽음의 과정을 경영이론과 인간의 역학 관계 등을 동원해 그려나가고 있다. 이 『삼국지』는 고전을 통해 조직에서의 처세와 그 이면을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둔 재해석 작업의 일환이었다. 고전은 우리에게 배움과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래서 20여 년간 조직생활에 이골이 난 이 사람의 경험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세상에 나온 수많은『삼국지』에 또 다른 버전을 하나 보탰다는 데 개인적으로 의미를 둔다. 누군가 “삼국지는 남성들의 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남성뿐 아니라 여성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랫동안 남성들만 득시글거리는 조직에서 홍일점으로 살아왔던 내가 조직과 남성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웠던 책 중의 하나가 『삼국지』였다. 그동안 나는 사회에 진출한 알파걸 여성 후배들에게 조직세계를 이해하려면 『삼국지』를 읽으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여성 후배들과 『삼국지』를 잘 모르는 신세대 직장인들을 위해서 사건이나 전쟁의 전후 관계와 의미, 등장인물들의 관계 등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이해를 돕고자 했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