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이 동사의 물리적 의미, 은유적 의미, 듣는다는 행위의 주체를 차례로 톺아 보았다. 관심은 자연스레 ‘듣다’의 목적어인 ‘소리’로 이어졌다. 세상은 어떤 소리들로 채워져 있는가,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소리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소리를 감지했을 때 청자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주인공 달이는 현실의 내가 가지 못하는 길을 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소리의 발원지로 눈길을 돌리고, 거기로 갔다. 결국 누군가의 사연과 기척을 듣는다는 건, 그 존재에 눈길을 주고 그 곁으로 가는 일이며 존재론적 응답임을 달이에게서 배웠다.
누군가의 개별우주는 온전한 해독이 불가능하며, 해독되지 않는 채로 두는 게 좋다. 그래야 동미들이 제 세상에서만 내리는 비에 젖을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동미들과의 거리를, 아주 조금, 좁히는 것뿐이었다. 도르륵 도르륵, 찬영이의 눈알 굴리는 소리가 울리고, 쿵쿵, 동미의 발소리가 진동하던 그 거리 어디쯤에 ‘보편우주의 행인1’인 내가 있었다.
그렇게라도 너희를 만나서 기뻤어.
“우리의 마음은 어느 날은 희아처럼 씩씩했다가 또 어느 날에는 수상한 중학생처럼 울며 헤매기도 합니다. 인생이란 동네 놀이터와 먼 공원 숲의 어둑한 구석 자리를 두루 거쳐 가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서로가 몸으로 외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내민다면 어두운 곳에서도 빛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부턴 여러분이 뭐허냐 탐정단입니다.”
오래전부터 외로운 소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외롭게만 끝나지 않는 소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유년의 황량한 벌판이 있었다. 바람이 몹시 세차던 그곳. 오늘 우리를 이루는 존재의 일부는 그 벌판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그 바람을 외로움이란 단어로 바꿔 불러도 무방하리라. 그래서 이 책은 바람의 이야기면서 외로운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