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꽃
요즈음 나에게는 그녀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바라보기만 해도 묘한 파동이 일어나 신비로운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청춘으로 만나 장년을 넘어서기까지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서 밥숟가락을 함께 나누며 살아왔다. 그 시공이 33년, 아스라하다.
블록 담집 관사로부터 단칸 사글셋방 전세로 이어지던 시절 그녀는 아기에게 먹일 우유가 없어 가련해 하면서도 아기를 길러냈고 기다림과 헌신으로 일관해 왔다. 혹한풍설을 거의 알몸으로 배겨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별로 해준 게 없다. 간혹 정신의 아찔함은 찾아왔었지만 그 흔한 사랑이란 말조차 별로 하지 못했다. 울렁거림은 약했고 파릇한 감흥의 순간 같은 것도 드물었다. 오히려 무덤덤해 하거나 투정을 부리곤 했다. 밋밋이 흘러가 버린 강물 같은 생,
돌아보면 그건 한 인간에 대한 모독이었다. 가혹한 일이었으며 시련이었다. 무례며 학대였다.
사실 각각 다른 개체가 만나 하나를 이룰 때 그 순간은 극적이고도 장엄하다. 마음과 마음이 어르고 몸과 몸이 결합할 때 들려오는 속삭임, 그 풀무 소리야말로 바로 천지가 하나를 이루는 소리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 순간들을 우리는 온전히 하나로 만들어갈 줄 몰랐다. 하나이되 그 하나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음미할 여유를 갖지 못한 것이다. 눈빛은 멀리 있었고 가슴은 낡아 펄럭댔다.
그런 지난날들이 몹시 미안하다, 고 되뇌며 섰던 어느 별 아래서 나는 이런 시 101편을 썼다. 그 사람이 이걸 모두 읽을 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고해의 편린들은 내 나뭇가지에서 떠나간다. 이제 나는 쉬고 싶다. 따스한 물가에 기대앉아 가물히 이울어가는 그녀 눈빛을 바라보며 그저 한가해지고 싶을 뿐이다.
벌써 땅거미가 진다. 산기슭으로 어둠살이 밀리고 바람 소리가 스산하다. 계곡으로 그림자들이 깊게 쏠리고 산봉우리에는 노을꽃이 눈물방울처럼 핀다. 처연히.
오 그 사람 내 아내 우렁각시여!
2003년 9월 26일
설악산 달마봉 아래서
안나푸르나 히말 그것은 어떤 맑은 정신의 덩어리였다. 강렬한 흰빛 생명 덩이. 그 드맑은 흰빛 덩이가 굽이치며 달려가 지덕이 옹아리치는 산상 무정처에 붓다의 동산 룸비니가 자리를 틀고 앉아 있다. 그리고 그 흰빛덩이의 만리행룡일석지지萬里行龍一席之地에 우리의 성산 백두가 망울졌고 백의정신이 움텄던 것이다. 히말라야는 그렇게 내게 왔다.
나는 백두대간 종주길에서 산이 경經임을 깨우쳤고, 킬리만자로 키보를 지나 해발 5천m를 오르내리면서 헐떡거리는 숨소리에 내 온몸을 쏠려야 하는 급박한 순간 숨이 다름 아닌 생명임을 알아챘다. 그리고 안나푸르나를 직접 맞닥뜨려서는 만년 백의의 그 냉엄한 고결성에 환희심을 일으키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