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인 1972년 뮌헨월드컵을 보면서 멋도 모르고 매 경기의 내용을 기록한 노트가 아직도 오래된 책상 속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권투에 미쳐 세계 랭킹을 모두 외우고, 가장 좋아하던 알렉시스 아르게요를 비롯한 선수들의 스크랩북을 몇 권이나 만들었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전공인 역사책에 쏟은 시간보다 메이저리그의 다저스와 에인절스 경기, 레이커스 농구와 레이더스 풋볼 경기를 보느라 보낸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처음 신문사에 입사했을 때까지도, 스포츠기자가 될 줄은 몰랐으니 희한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스포츠를, 월급에 출장비까지 받아가며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봤으니 큰 행운이었습니다. 월드시리즈도 가고, 월드컵도 가고, 올림픽도 가고….
여전히 한국과 미국의 야구장을 다니며 선수들과, 지도자들과, 팀 관계자들과, 팬들을 만나고 다닙니다. 미국 야구장 기자실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장 기자들을 보면 그렇게 부럽데요. 그런데 언제부턴지 제 머리도 점점 비슷한 색깔이 돼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