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은 지금까지도 광범위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우선 제임스 부겐탈(James Bugental)은 메이의 제자 중 가장 인간중심적 접근을 강조한 사람으로서 실존적 인간중심 접근법을 많은 저술과 강연을 통해 소개 해 오고 있다. 두 번째 인물은 현재 실존치료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어빈 얄롬(Irvin Yalom)인데 역설적이게도 제자들 중 실존주의 성향을 가장 적게 띄고 있으며 심리치료과정에 실존적 과제들을 다루는 정도로 접근하고 있다. 세 번째 인물이 바로 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커크 슈나이더(Kirk Schneider)인데 사실 현재 실존적 인간중심 치료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한 실존적 인간중심치료 연구소는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이 접근의 확산에 중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의 실존치료 학파들과 달리 실존적 인간중심치료는 유럽적 실존철학에 미국철학자들의 실용주의 정신을 포함시키고 칼 로저스(Carl Rogers)를 중심으로 하는 인간중심치료의 영향을 접목시켜 미국 중서부 지방 출신자들이 그 지역의 문화이기도 했던 강함, 용기, 불굴의 의지 등을 토대로 재창조해 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심리치료와 상담 영역에서의 활동이 이어져 갈수록 역자는 실존적 인간중심 접근이야 말로 심리치료사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하는 확신이 깊어가고 있었는데 이는 Counselbot 이나 Chatbot 등의 인공지능로봇에 의한 상담이나 심리치료가 생겨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더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실존적 경험적 인간중심적 측면이야 말로 인공지능이 엄두를 낼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 분야의 중요 저서들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고자 하였고 가장 대표적 인물인 커크 슈나이더의 책을 여러 권 살펴보며 욕심을 내었으나 번번이 좌절하고 말았었다. 그 이유를 몇 년 전 커크 슈나이더를 만나보고서야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경험을 회상해 보면 그에게서 역자는 무척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고 따뜻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성격답게 그의 글도 깊이 있는 내면적 사유로 가득 차 있고 글쓰기 또한 직설적이기 보다는 묘사적이며 독자의 사유와 이해의 범위를 최대한 확장시켜주고 존중해 주는 식으로 썼던 것이다. 그래서 만연체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풀어서 번역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 실존적 인간중심 치료를 번역하기로 용기를 내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저자인 슈나이더가 이 접근의 입문서로 가장 적절하다고 추천한 점도 한 가지 이유이지만 두 번째 저자인 오라 크러그(Orah Krug) 여사의 영향이었는지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비교적 간명하고 읽기 쉽게 쓰여 있었다는 이유도 크다. 또한 열정 가득한 황인식 박사의 역량에 힘입을 수 있었던 부분도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올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이다. 책을 번역해 내고 보니 계속 다른 표현들이 없을까? 좀 더 쉬운 설명은 없을까? 하는 마음이 크지만 실존적 인간중심적 관점을 이 역자의 불안에도 적용해 보며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내 보내고자 한다. 이 책이 지닌 본래적 가치에 의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도움을 제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음이다.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도움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유원북스 이구만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또한 함께 원고를 읽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한동대학교 상담센터의 박영규 연구원, 연세대학교 상담코칭 박사과정의 신정미 선생님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머리말(역자)
최근 KoKo라는 정신건강 플랫폼은 4천여 명의 사용자들에게 챗GPT를 통해 상담을 제공하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초기에 챗GPT가 상담 과정에 답변을 작성했다는 사실을 내담자들에게 알리지 않았을 때는 챗GPT의 상담 반응이 인간 상담자들의 것보다 더 적절하고 더 신속하다 평가받았으며 이 서비스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도움을 받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후 이러한 모든 상담적 반응들이 챗GPT가 생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내담자들이 알게 되었을 때는 챗GPT의 상담적 효과가 즉시로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본래성이 느껴지지 않아 불쾌하다고 느끼거나, 이 모든 과정이 비윤리적이고 착취적이라고까지 느껴져 분노하는 내담자들이 나타났다. 왜 이러한 결과들이 나타난 것일까. 상담과 심리치료가 고유의 효과를 발휘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체화되고 체휼하는 몸을 지닌 동료 인간으로서 고통을 공유하는 사실 자체가 치료적 효과의 필수 과정인데, 이것이 포함되지 않은 공허한 말의 오고감이 내적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였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동기가 없어 보이는 내담자를 도우려 할 때, 어디서부터 그 사람의 가치와 동기를 찾아야 할지 고민하는 젊은 상담자들에게 나는 종종 그 사람이 처한 고통의 자리에 가서 같이 앉아 있어 보라고 말하곤 한다. 그 고통의 자리는 그 사람의 가치와 소중한 것들이 있는 자리이기도 하고, 그래서 고통스러운 법이기 때문이다. 고통의 의미와 그 고통의 이면에 있는 소중한 가치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 본래성 있게 현존하며 실존할 때 비로소 고통 너머에 있는 의미를 끌어안고 그 호소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긍정성과 합리성이 극대화되며 탄생한 AI 시대에도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인간의 고통은 인간으로서의 결함과 실존적 한계들을 더욱 용기 있게 마주하는 실존치료에 그 길이 있다고 역자는 믿는다.
제자들과 함께 이 귀중한 책을 번역할 수 있었음에 특별히 감사한다. 챕터의 배정은 다음과 같으며 역자 대표와 한동대학교 일반대학원 심리학과의 임한나가 다른 부분들의 번역을 담당했고 전반적인 일치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1장 신정미, 2-3장 오성은, 4-6장 박준영, 7-12장 이상훈, 13-15장 이영희, 16-18장 김향미, 19-24장 김예인, 25-27장 추교현, 28-30장 김병진).
제자들에게 실존치료를 가르치며 항상 즐겨 사용하는 비유가 있다. 실존치료자는 멀리 집을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는 지치고 외로운 여행자인 내담자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 주는 길동무와 같다고 말이다. 삶의 숭고한 여정에 길동무로, 페이스메이커(pacemaker)로 초대받았으니 마음을 모아 허락된 길을 잘 걸어가야 할 일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역자들에게 그랬듯이 독자들에게도 아기 예수를 만나러 길을 떠났던 동방박사들의 앞길을 비추어 주었던 길잡이 별처럼 귀중한 역할을 해줄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2025년 봄을 기다리며
최근 재활상담(Rehabilitation Counseling) 분야의 미국 대학원에 제자들을 진학시킬 기회가 있었다. 현재 U.S. World News and Report 의 미국 대학원 프로그램 평가에서 이 분야의 공동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과 Michigan State University의 학위과정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수년째 이 분야의 1위를 지키고 있고 각 학교의 졸업생들이 학계와 현장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두 프로그램의 학과장들이 대학원 합격자들에게 꼭 일독을 하고 오라고 추천하는 책이 공통적이었다는 점이다. 그 책이 바로 Tarvydas와 Hartley가 에디터로 참여 한 The Professional Practice of Rehabilitation Counseling, Second ed. 이 책이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최근의 재활상담분야의 제반 영역들을 광범위 하면서도 밀도 있게 균형감을 가지고 잘 다룬 책이라고 생각했다. 2판에서는 재활상담 대학원 과정의 인증시스템인 CORE(Council on Rehabilitation Education)와 미국상담학회의 프로그램 인증시스템인 CACREP(Council for Accreditation of Counseling and Related Educational Programs)이 통합되는 과정의 복잡하고 미묘한 이슈와 전망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포함시키면서도 동시에 책의 내용들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도록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책은 에디터인 University of Iowa 의 Vilia Tarvydas의 혜안과 University of Arizona의 Michael Hartley의 신선한 관점이 만나 조화를 이룬 최선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 책이 훌륭하다는 판단은 재활상담 분야의 교수와 학자 그리고 전문가들이 비교적 공통적으로 내리는 결론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한국상담학회 산하 재활상담학연구회의 연구활동의 일환으로 번역되었다. 최신의 재활상담 기본서를 우선 번역하자고 하는 우리나라의 재활상담 전문가들의 의견들이 모여져서 몇 권의 후보 서적들 가운데 가장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이 선정되었다. 역자 분들께서는 각자의 바쁜 연구와 교육 활동들 가운데 틈틈이 시간을 내어 번역에 참여해주셨고 교정과 마무리의 과정을 여러 번 거쳐 출판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 애를 많이 써 준 박영사 편집부와 한동대학교 상담센터의 김예인 선생께 고마움을 전한다. 역자와 각기 맡은 챕터들은 다음과 같다.
한동대학교(상담심리) 신성만 교수가 19, 20장과 기타 부속물들을 번역하였다. 서울대학교(교육상담/특수교육)의 김동일 교수가 6장과 7장을 번역하였다. 경일대학교(상담심리)의 고은영 교수가 11, 13장을, University of Iowa에서 재활상담교육학을 전공한 김기현 박사가 4, 5장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김원호 박사가 1, 3장을, 서울대학교(특수교육)의 김희은 박사가 16, 17장을,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상담심리/미술치료)의 안성희 교수가 21, 22장을, 서울대학교 특수교육연구소의 이미지 박사가 9, 10장을, 단국대학교(상담)의 이주영 교수가 12, 14장을, 한국교원대학교(상담심리)의 정여주 교수가 2, 8장을, 인하대학교(교육대학원/상담심리대학원)의 지은 교수가 15, 18장을 번역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재활상담학은 아직 시작단계에 있다. 장애와 관련된 유사 접근과 학문들 그리고 직역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와 함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당사자들과 가족들의 심리적 사회적 필요를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함께 소통하며 그 빈자리들을 채워가는 재활상담의 서비스들은 안타깝게도 대단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재활영역에서 전문적 상담의 필요성이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못지않게 상담전문가들의 다양한 영역들 가운데 재활적 접근과 이들에 대한 상담역량이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다는 이중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우리의 현실과도 맞물려 있다. 오랫동안 두 전문가 단체들이 노력하여 CORE와 CACREP을 통합시킨 미국의 사례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준 듯하여 우리나라 재활서비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어본다. 아무쪼록 이 책 재활상담학 개론이 상담가들에게 널리 읽혀서 재활상담 서비스가 더욱 많이 제공되고 전문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2020년 봄
포항 한동대학교 연구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