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무엇보다 개성이 생명이다. 개성은 참신성을 담보로 한다.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글감을 포착하면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부터 참신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해석한 것을 형상화 시키는 과정도,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그래야 할 것이다. 누구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닮아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모창 가수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는 설혹 조금 서툴더라도 참신한 개성을 지닌 작가를 찾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나는 나답게’, ‘당신은 당신답게’ 쓸 때 독자는 그 작가를 기억할 것이며,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소설론 중에서
지난 겨울은 몹시 추웠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나는 그 겨울 내내 추위에 떨었다. 눈을 뜨면 하늘을 덮은 잿빛 구름의 음습한 그늘 뿐, 내 몸을 녹일만한 따뜻한 햇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절대 절명의 그 순간, 병상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아주 작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몸을 떨었다. 그때 하나님은 나에게 시를 붙잡게 하셨다. 그 속에서 빛을 찾으라 하셨다.
몇 년 전인가. 한 겨울철에 대관령을 지나다가 덕장에 걸려 있는 북어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것을 보면서 저들은 이 추위에 거기 매달려 무엇을 소망하고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물론 쓸 데 없는 상념일지는 몰라도 그때 나는 그것들이 모두 이 땅의 시인들처럼 느껴졌다. 추위와 칼바람, 눈보라에 살점이 뜯겨나가는 절망 속에서도, 두 눈 부릅뜨고 꼿꼿이 매달려 하늘을 향하고 있는 시인의 정신 같은 게 느껴져서 쉽사리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여기 실린 시편들은 그러니까 그런 시인들의 정신이 한곳으로 응축되어 나온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가슴으로 쓴 시 한 편 한 편들이 아무쪼록 이 땅의 지친 영혼들을 위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 한 편으로, 그 시인의 시세계를 모두 인지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인들이 각각 풍기는 그 독특한 향기만큼은 맡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금 나는 서 있다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하면 나는 아파트 창밖의 애기단풍나무를 내려다보곤 한다. 누구의 짓인지는 모르지만 지난해 중심 가지가 부러지는 아픔을 당하고도, 또 유난히 혹독했던 겨울 추위에도 그 조그만 나무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게 신통하다. 살아 있다는 걸 알리겠다는 듯 봄이 오자 다시 그 앙증스러운 빨간 이파리를 조심스럽게 펼치기 시작했다.
나무는 수직성을 지니고 서 있을 때 아름답다. 쓰러진 것, 뿌리가 뽑힌 것, 토막이 난 것들은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나무는 사람의 숙명과도 닮은 데가 많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벼랑에 몰린 고통이 아무리 참담하더라도 서서 버티고 있어야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수평의 자세가 되어 눕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굴복이다. 그런 까닭에 시련과 고통이 덮쳐와도 이 악물고 끝까지 서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나는 지금 서 있다.
쓰러지지 않고, 곧바로 서 있다.
내가 땅에 발붙이고, 이처럼 서 있다는 건 나를 나 되게 하는 내 자긍이며,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내 자존심이다.
소설이 실종된 시대라고 한다. 이는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세상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 찼고, 그것보다 더 재미난 것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4년 만에 소설을 묶어 책을 펴낸다는 것이 어찌 보면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두렵거나 후회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을 읽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무모할지언정 용감해지고 싶은 마음이다. 그 사람을 위해 나무처럼 수직성을 유지한 채 언제까지라도 서 있을 작정이다.
어제는 비가 내렸고,
오늘은 바람이 사납게 불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떨까?
알 수 없다.
그러나 내일만큼은 햇빛이 눈 부시게 밝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벌써 40년이 지났다니, 시간의 무정과 공평을 절감한다.
책이 출간되기까지 곁에서 도운 소설가 김나영과 수필가 조수행, 그리고 도서출판 들꽃의 문창길 시인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이 아직도 뇌경색으로 몸이 자유롭지 않은 아내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아 있게, 이 나이들도록 꼿꼿하게 서서 숨 쉬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23년 6월 중순 파주 교하에서 저자 씀
이제 모두 내려놓고 빈 몸이 된 나는 다시 여장을 꾸린다. 아직은 쉴 때가 아닌 줄 알고 있는 나는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내 기억 속으로 또 길을 떠날 예정이다. 그들은 벌써 자신부터 끄집어내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번 여행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다. 길고 지루한 여정이 될 터이지만 나는 그들과 더불어 다시 싸우고, 다투고, 사랑하고, 뒹굴고, 노래하며 갈 생각이다. 그게 불투명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 부조리와 열등의식 등을 대변할 수 있는 길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다.
아파트라는 특수 공간이 만들어 내는 풍경. 집단 공동체이면서도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개인주의에 젖어 있는 입주자들……. 그러면서도 때로는 이웃과 더불어 울고 웃는 어쩔 수 없는 인간적 본성……. 사실 나는 처음부터 아파트라는 시멘트 구조물 속에 갇힌 사람들을 그리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본성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그려보고자 했다. 되도록이면 그들이 호흡하는 삶을 그들의 색깔대로 페인팅하고 싶었다. 서툴지만 정말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것을 소설의 본질이라고 믿고 살아온 만큼, 그것을 통해 소설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