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미명의 어둠 속이며 무한한 우주의 심연에서 존재하는 모든 존재자들의 어떤 자리(la position)이다. 바깥은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없고 어떤 이름도 없이 온전히 스스로 ‘있음’으로 빛나는 것들의 자리이다. 바깥은 모든 법과 주체의 동일성의 원리로 통제되는 삶에 대한 ‘죽음의 선고’이며 죽어감과 되살아남이 동시에 발생하는 무無의 장소이다. 주체와 인칭(人稱)이 죽고 ‘비인칭(Impersonnalite)’과 ‘중성(Neutre)’(모리스 블랑쇼)이 되는 지점이다. 바깥에서 이름을 지닌 존재자들은 ‘~이다’의 규정성에서 풀려나와 ‘~이 있다’는 무규정성의 존재가 된다. 바깥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언어의 한계 속에서 마주하는 사물들의 범람이며 ‘있지 않음의 있음’, 그 사물들이 개시되는 세계이다. 의미가 비어 있는 중심이다. 일상의 기욤이 죽고 시인이 되는 시간, 기욤의 타자성이 실현되는 시간이다. “진정한 시는 법의 바깥에 있다”(조르주 바타유)는 것을 경험하는 글쓰기.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가 말하는 상태의 경험. 기욤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불현 어떤 미결정의 목소리에 붙들려서 매혹되고 ‘나’ 너머에 잔존하는 모든 것에 의해 시가 씌어지고 시를 받아쓰는 순간의 경험이다. 세월호 사건과 촛불 집회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하여 일상적 삶의 외부로 추방당하고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경험이다. 삶과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것을 균열시키는 외부의 경험이다. 그리하여 바깥으로의 이행은 완전한 무(無)의 경험과 타자성의 글쓰기이며 규정된 삶의 의미를 전복하는 미학적이며 정치적인 실천이다. (엮은이_「책머리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