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시는 이러해야 한다는 강요와 청소하라는 압박이다. 그러나 여기 퍼 부린 하나의 난삽한 형식은 그 반작용 때문이 아니다. 나에게 시는 그렇게 다가왔고 이렇게 새어나와 바닥을 적셨다. 청소하기 싫었다.
어둠이 70퍼센트의 농도로 공간을 점령한 이른 밤, 담담하게 바라보는 치우지 않은 방과 책상은 어떤 문명이 남긴 미학적 폐허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것도 난삽의 이유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 나를 둘러싼 시공간이 속삭인 것을, 소용돌이치면서 내게 각인한 것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그러나 누구는 청소하라는 외침 뒤를 메우는 작은 메아리에 대한 오해라고 했고 반(反) 청소적 심리 상태가 만드는 환청이라고도 했다.
어둠이 30퍼센트로 희석된 이른 아침, 책상은 더께 앉은 화석이다. 청소가 훼손일 때도 있다는 핑계가 얼마나 타당한지 따져보는 일은 다시 미룬다. 청소하기 싫다.
2012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