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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정용준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81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

직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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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세트] 당신을 기대하는 방 + 쓰지 않은 결말 - 전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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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1. 불면은 내게 가장 익숙한 인격이다. 자궁 속에 함께 잉태되었던 얼굴 없는 쌍생이 아닐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 깜깜한 밤이, 그 속을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새벽이, 어릴 때는 유령처럼 두려웠으나 지금은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하다. 두려움과 친근함의 힘에 의지해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생각을 하고 의자에 멍하게 앉아 타닥타닥 타이핑을 했다. 프린트된 원고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불쑥 외롭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우편비행기를 타고 홀로 밤하늘을 날고 있는 우편배달부가 된 것 같았다. 외로웠으나 충만했고, 절망스러웠으나 슬프지 않았다. 어느새 밤이 나를 까맣게 물들였다. 이제 얼룩도 없고 흔적도 없다. 글이 준 선물이고, 글이 준 장애다. 모든 소설을 새벽에 썼다. 소설집 제목을 ‘야간비행’으로 짓고 싶었다. 2.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삶이 되었다. 앞으로도 평생 계속될 것이고 그리 되도록 힘쓰고 애쓸 것이다. 소설은 내 자신을 많이 바꾸어놓았다.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좋다. 소설가의 유일한 윤리는 좋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대로 살 것이고 함부로 낙담하거나 글의 힘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3. 사람들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호명하기 시작하면 끝나지 않는 길고 긴 편지를 써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그 편지를 부치지 못하고 구겨버릴 것이다. 희미해지거나 투명해지거나 아주 작아지길 원한다. 그대 곁에 서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끝없이 말하고 싶다. 혹은 투명한 내가 그대의 몸에 포개어 서서 당신이 갖고 있는 몸의 부피와 형상을 느껴보는 것도 좋으리.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기도할 것이다. 사랑을 전하고 마음 다해 용서를 구한다. 4. 첫 책이 추운 날 나오는 것이 좋다. 누군가 책을 사들고 거리를 나설 때 하늘에서 눈이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다. 그가 집에 도착해 외투를 벗고 책 표지에 쌓여 있는 하얀 눈을 손바닥으로 쓱 밀어내면 멋지겠다. 그런 것들을 상상하면 뭐랄까, 행복해진다. 5. 오늘은 그늘. 결말도 없고 끝도 없는 길고 긴 소설을 꿈꾼다. 소설을 평생 칠백 편 정도 쓰고 싶다.

바벨

말이 튀어나오는 이미지는 유년기에 갖고 있던 일종의 망상이었습니다. 입에서 나온 말이 허공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다 갑자기 힘을 잃고 둥둥 떠 있는 것이지요. (민물고기는 바다에 들어가면 숨을 쉬지 못하고 몸을 뒤채며 몸부림치다 죽고 맙니다. 그것과 흡사 합니다.) 형상도, 형체도 없는 것이 마치 살았다가 죽은 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도처에 널려 있는 이미지는 어린 시절의 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말할 때마다 뭔가를 죽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말더듬이로 살아왔습니다. 그 문제를 언젠가는 해결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소설로 쓰게 됐습니다. 소설을 쓰면 해결이 되나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언어가 있어 다행입니다. 언어는 많은 이미지들과 생각들을, 어떤 순간과 긴 이야기를 마치 얼음처럼 얼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전하게 얼릴 순 없지요. 밤새 이야기를 만들고 아침마다 깨진 언어가 녹으며 내는 이상하고 괴이한 노래는 슬프고 참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며 사는 게 좋습니다. 그 무엇도 그 기쁨을 앗아갈 순 없습니다. 이 책은 나보다 오래 살게 되겠죠.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내게 삶을 준 부모님과 사랑을 알려준 가족들, 기억과 감각을 전해준 이들 그리고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애쓴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손 흔드는 소설

이상하다. 하나였다 둘이 되어 다시 하나가 된 것뿐인데 힘들다. 남겨진 것 같고, 떨어진 것 같고, 버려진 것 같다. 하지만 미래의 나는 안다.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 밤과 낮이 바뀌고 혼란과 어지러움은 곧 잠잠해진다는 것을. ‘이별’의 연관 단어는 ‘극복’이다. 하여 다시 온전한 하나가 됐을 땐 몸도 마음도 강해지는 것이다. 각성하는 머리와 성장하는 몸. 다시 이별이 찾아오면 기꺼이 손을 흔들어 주자. 그동안 고마웠다고.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울음을 물음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아 - 이제니 「곱사등이의 둥근 뼈」 중에서 울면서 묻는 사람을 봤다. 묻다가 우는 사람도 봤다. 그들 중 몇몇은 죽었다. 그는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른다. 들리지도 않는데 계속 말하고, 말하고, 말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일이란 괴로웠다. 민망하고 미안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떤 날엔 들어주고 보이는 척했다. 그러다 소설을 썼고 웃긴 문장은 읽어주기도 했다. 웃으라고 읽어줬는데 그는 계속 울고 물었다. 그게 계속 반복되는 나날들이었다. 이제 나는 ‘물음’과 ‘울음’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슬픈 것들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것들. 억울한 줄도 모르고 화난 줄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사는 것들. 분노로 타올랐다가 금방 잿빛으로 변한 것들. 잃어버린 투명한 정신들. 왜 나는 그것을 쓰는 걸까. 미안해서일까. 부끄러워서일까. 소설이 좋다. 소설이 내게 하는 일들. 소설을 쓰며 느끼는 것들. 아무 힘도 없는 문장 한 줄과 허구의 이야기가 나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환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내 곁에 서서 말을 들어주고 종종 대화도 나눈다고 믿는 망상과 어리석음, 이 모든 것들이 나는 좋다. 소설이 세계를 바꿀 수는 없겠지. 하지만 사람은 바꾼다. 쓰는 자는 바뀐다. 읽는 자는 바뀐다. 이것은 내가 경험으로 깨닫게 된 유일한 믿음이다. 내 소설 속 인물들이 모두 꿈속으로 찾아왔으면 좋겠다. 사죄하고 싶다. 밥도 사주고 싶다. 예쁜 이름도 지어주고 싶고 따뜻한 이야기도 새롭게 만들어주고 싶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해피엔딩도 선물해줘야지. (그리고 부탁해야지. 문장이 잘 써지는 손가락을 주세요. 용기를 주세요.)

저스트 키딩

소설小說은 작은 이야기다. 그 말이 좋고, 뜻은 더 좋고, 글자의 모양과 생김새는 더 더 더 좋다. 내게도 '짧고 작은 이야기책'이 생겼다. 앞으로 기분이 좋을 예정이다. 가끔, 문득, 불쑥, 자주, 행복할 것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경쾌하게 엔터키를 누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백스페이스키를 눌러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글쓴이가 되고 싶다. 이제 더는 소설이 좋다느니 소설을 계속 쓰겠다느니 같은 다짐과 결심은 하지 않을 테다. 다짐 없이도 살고 결심하지 않고도 쓰는 이 삶이 내게 읽을 것과 쓸 것을 계속 줄 것을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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