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첫사랑 이야기이다.
그때로부터 4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내 심장 안에는 산골짜기 조류 소년이 아직도 뛰어다닌다. 나에게는 숲속을 탐험하는 일이 언제나 우선이다. 그에 비한다면 올림픽도, 프로야구와 월드컵도,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도 모두 시시하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뛰어놀던 어린 시절은 나의 에덴이다.
자연과 문학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분야가 생태문학이었으므로, 나는 오랜 시간 그 분야에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여왔다. 내가 생태문학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붙들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바로 수진이의 기억이다.
그 기억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언제나 내가 자연의 일부이며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었다.
내가 꾸었던 조류학자의 꿈은 문학적인 환상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문학적인 방식으로 그 꿈을 조금씩 성취해왔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최초의 모험에 매듭을 짓는다.
이제 또 다른 계절을 향해 매처럼 날개를 펼쳐야겠다.
새와 자연과 동심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선물하고 싶다.
소리울 숲속 이야기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주말마다 텃밭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교감한 경험을 틈틈이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둔 조각들이다. 조금 깊이 있게 보완해서 인문학적인 책으로 출간할까 고민하다가 날 것인 채로 묶었다. 현장감을 잃고 싶지 않았다.
주말에 하루 이틀 시간 내는 게 쉽지 않았지만 독실한 신자처럼 성실하게 출석했다. 자연 속에서 신성과 생명의 충만을 느꼈다. 노동과 유희 가 다르지 않았다. 오래된 미래의 에덴을 가꾸고 싶었다.
기후 변화와 위기를 절감하면서 나의 텃밭 생활이, 그리고 이 책이 지 구별 생태계를 돌보는 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지구별의 모든 생명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24년 봄
소리울 숲속학교에서
에코이즘의 삶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나의 학문은 줄곧 자연과 시, 종교와 함께하여 왔다. 나는 박사학위 논문 「한국 현대시의 불교적 시학 연구」로 2005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한국 현대시와 종교 생태학’이라는 화두를 붙들었다. 그 각론 차원에서 내가 30대 후반의 학문적 열정을 경주한 분야가 ‘한국 현대시와 불교 생태학’이다. 불교야말로 가장 생태주의적인 종교이다. ‘무아(無我)’, ‘연기(緣起)’, ‘공(空)’, ‘자비(慈悲)’, ‘불살생(不殺生)’,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이러한 개념들은 얼마나 생태주의적이고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불교 교리는 생태주의적인 사상들로 충만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개념은 연기와 윤회일 것이다. 주지하듯이 연기론은 불교사상의 초석과도 같은 개념이다. 그것은 신비로운 인과율과 상호의존성의 법칙을 담고 있다. 만유의 인과성과 상호의존성을 담고 있는 연기론은 불교사상의 생태주의적 면모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연기론은 근대과학과 신과학 차원에서 근대적 가용성, 대안과학의 가능성이 진단되었다. 연기론은 불교가 갖는 현대사회에서의 적응력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핵심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불교의 연기사상에 호흡을 댄 연기적 상상력은 불교 계열 시인들의 시에 폭넓게 나타난다.(중략)
본서는 시인들의 사상과 작품에 깃들어 있는 생태주의적 사유와 상상을 조명한다. 그러나 과연 그 시인들의 삶은 생태주의적이었는가? 특히 우리 문학사에서 친일 문인, 친군부 시인으로 낙인이 찍힌 이광수와 서정주의 삶은 생태주의적이었는가? 이런 질문 앞에서 나는 당혹스럽다. 친일이나 친권력 행위는 틀림없이 반생태주의적인 태도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광수와 서정주는 어떤 면에서는 지행합일, 언행일치에 실패한 시인이다. 본서에서 중요하게 다룬 에코파시즘은 그런 어두운 점을 포착한 논의이다. (중략)
우리가 생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삶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제도의 변화이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생태위기의 가장 큰 요인은 인류의 에고이즘이고, 그것이 만들어낸 자본주의일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에 의해 작동하는 지금의 정치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임박한 종말의 위협을 해소시킬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 내부에서 인류는 그 누구도 ‘생태 괴물’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개인적 삶에서의 소소한 실천과 사회 시스템의 개선을 위한 정치적인 참여와 변화가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최소한 ‘야만주의’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생태주의적인 사회 시스템과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려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