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김미현의 평론은 삶에 대한 하나의 철학이자 지침으로 스승이 되어 왔지만, 동시대 문학과 긴밀하게 호흡할 때면 허심탄회하면서도 통찰력이 매력적인 친구이기도 했다. 여러 담론을 정교하게 엮어 작품이 놓일 자리를 정확히 위치 짓는 데 있어서는 언제나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그러니 여전히 다시 즐겁게 읽을 글들이 많다. 좋은 신화소가 시대를 뛰어넘어 여러 서사로 변주되며 살아남듯, 커다란 잠재성을 품고 있기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은 이들의 눈과 손이 닿으리라 생각되는 글 열 편을 추렸다.
나의 평론이 무언가에 비유된다면 강렬하고 차가운 로고스의 빛이 아니라, 어둠까지도 부드럽게 포용하는 파토스의 그림자에 가깝기를 바랐다. 파토스가 지나간 뒤 선연하게 남은 것들을, 그 격정과 상실의 낙차가 만들어내는 흔적들을 정확히 기록하고 싶었다. 사랑에 빠졌을 때보다 사랑이 끝난 뒤에 비로소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해버리는 것처럼, 빛이 아닌 그림자의 자리에서 사랑이 아닌 이별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견디며 써나가고 싶었다. 하나의 존재에 무수히 많은 그림자들이 드리워지듯 하나의 문학 텍스트에는 무수히 많은 해석이 달리겠지만, 텍스트가 시대와 나를 관통하는 순간의 파토스를 정확하게 잡아채서 절대적인 하나의 그림자가 되고 싶었다. 빛에 따라 그 모양과 농도가 계속해서 변하는 그림자의 유연한 힘을 닮고 싶었다. 존재에 가장 밀착해 있지만 결코 소유되거나 통제되지 않는 그림자의 자유로움으로 세계와 조우하고 공명하고 싶었다. 이 글을 시작하며 찾고자 했던 내가 홀렸던 문학의 빛은 아마도 한여름의 눈부시고 장엄한 광휘가 아니라, 낡은 베일 사이로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다 부서져내리는 빛과 그림자였던 것 같다. 시대를 또렷하게 응시하며 영향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바꾸며 계속해서 나아가는 그림자-되기.
2022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