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너는 이런 세계를 가진 존재였구나. 고마워, 세계를 다시 볼 수 있는 기쁨과 고통을 알려주어서. 기다려, 내가 그쪽으로 갈게. 내가 너에게로 가서 너의 수만 가지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줄게. 나의 마음을 다해 너와 함께 있을게…… 세상에 이렇게나 슬프고 아름다운 것이 많이 있다는 감각은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신비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혹은 도시의 거리를 걷다가 문득 떨칠 수 없는 기쁨으로 파르스름하게 나는 불타오르고는 했다. 무수한 작은 싸움들 끝에 이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만족감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선생은 잔혹하고 거대한 세계에 맞서 오직 소설 하나만을 의지한 채 살아왔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에 오직 낡고 허름한, 그러나 언제까지나 도도하게 빛날 소설이라는 이름의 죽창 하나만을 들고 말이다. 그는 살기 위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소설을 썼다. 그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겠는가. 또한 얼마나 일방적인 패배의 과정이었겠는가. 그의 내면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 상처란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그는 살아남아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다. 그렇게 피워올린 불꽃을 보고 이 땅의 수많은 독자들이 울고 웃고 감동받고 위로받고 사랑을 꿈꾸며 살았다. 그러면 됐다. 그것으로 됐다. 아비로, 선생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 그러나 그 어떤 이름보다 선명하고 당당하게 불리워져야 할 이름이 여기 있다. 작가 이름 박범신. 소설가 박범신. 이 불꽃은 아직 더 황홀하게 타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