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만 해도
시리아나 아우슈비츠처럼 객관적 지옥도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수많은 주관적 지옥들이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관계를 맺고 사는 한 크고 작은 지옥을 경험 안 할 수 없다. 누가 내 뒤통수를 쳤을 때. 나만 따돌림 당했다고 느낄 때. 누군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질 때. 오장육부라도 꺼내 보이고 싶을 만큼 억울할 때. 그런 순간들은 어김없이 지옥이다. 문제는 그 지옥에서 어떻게 빠져 나오고 어떻게 지옥의 고통을 줄이느냐 하는 것이다.
방법이 있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여기 있게 됐는지 알려주는’ 지도 한 장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안개가 걷히고 혼돈이 줄어든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도 시야만 확보되면 헤쳐나갈 힘이 생긴다. 간단해 보이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에게도 통용될 만한 치유의 원리다. 일상의 지옥을 헤쳐나갈 때는 더 강력한 팁이 된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여기 있게 됐는지, 그걸 알기만 해도 그렇다. 경험상, 시(詩)는 그런 지도를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도구다. 시를 통해 그런 치유적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