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적 정치철학자 아감벤,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지나간 90년을 돌아보니 꿈만 같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어머님의 기도로 다복한 가정을 이끌고 자손들도 번성하니 한 인생으로 보자면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이미 오래 전 죽을 뻔한 목숨이었지만 지금까지 주님의 은혜로 살아있고, 아내와 90이 넘도록 해로 하였으니 더 바랄것이 없다. 더구나 일제치하에서 독립과 광복을 위해 옥고를 치른 것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에서 독립유공자로 훈장까지 받았으니 내 몫은 다한 셈이다. 하지만 아직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이 소설은 내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미국 학생 하나가 내 지난 삶을 듣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껴, 그것을 영어로 써서 보여준 것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 학생이 기특하기도 하고 미국사람들에게도 그토록 흥미를 끈다면, 싫든 좋든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고단한 신세타령 같은 이야기나마 소설로 써 볼까하는 용기가 생겼다. 나이 탓이든 실력 탓이든 생각하는 바를 다 살리지는 못했지만 사실을 기초로 상상력을 더해 보았다. 90이 넘은 사람이 잊혀져가는 우리 역사를 안타까이 여겨 소설로 살려낸 것으로, 소설로 치자면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전문 소설가의 눈에는 묘사나 구성도 엉성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비극은 당대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더욱 생생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미국에 살면서 많은 입양아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어찌 봉길이 만한 사연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붓을 들고 싶었다.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동족상잔으로 갈라진 남북 가족의 비극 사를 봉길이라는 소년을 통해 시대상과 함께 그려보고 싶었다. 홀로 월남하여 새어머니의 핍박을 받고 청계천 거지와 소매치기 집단 그리고 고아원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오마니’의 콧노래에 영감을 얻어 본성을 잃지 않고 살다가 미국군인의 도움으로 입양되는 봉길이 같은 아이가 바로 우리들의 자녀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과거가 없이는 현재가 없고 미래도 없다. 이 소설을 통해 참담하고 궁핍했던 전쟁과 그 시절을 전혀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 뜻이 잘 전달되고, 과거를 포용하되 전쟁의 참상을 잊지 않으며 민족화해와 통일을 꿈꾸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어두운 역사의 뒤안길을 들여다보며 오늘의 풍요가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까지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