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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이름:오진엽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9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

직업:시인 전동차승무원

최근작
2024년 7월 <순창시장 참기름 집>

순창시장 참기름 집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손이 갈퀴가 되도록 논밭에서 뒹굴어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무능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 때문에 육성회비 제때 한번 내지 못한 저는 아버지를 참 많이 원망했습니다. 밀린 육성회비 고지서 들고 어깃장 부리면 차라리 늬 에미를 내다 팔라는 공갈에 맞서 어머니라도 내다 팔고 싶었던 궁색한 등굣길. 돈 안 되는 농사를 일찌감치 그만두고 공장에 다니던 아버지를 둔 덕에 육성회비 밀리지 않던 또래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평생 흙만 파먹고 사실 줄만 알던 아버지도 어느 날 결국 벽돌공장 잡부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당장 육성회비 걱정 없을 생각에 탱탱볼처럼 통통 튄 제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일이 서툴러 혹여 일감이 떨어질세라 벽돌공장 사장에게 전화기 들고 조아리던 아버지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그 모습이 낯설었습니다. 제가 아는 아버지는 절대 남 밑에 들어가서 일할 성정을 지니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없이 살아도 남 앞에 평생 굽실거리지 않았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던 아버지가 결국은 고개 수그리며 기꺼이 자신을 낮춘 건 순전히 집안 형편 아랑곳없이 덜컥 대학에 붙어버린 형과 철부지인 제 탓인 것만 같아 우울했습니다. 이제 저도 그때 아버지 나이가 되어보니 적당히 타협하면서 비굴해질 때가 참 많습니다. 그저 정해진 주로를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채찍에 순응하는 경주마처럼 살아갑니다. 식구들 볼모로 잡힌 핑계로 부당함을 보고도 힘껏 뒷발질 한번 못하고 눈치껏 살아가면서 그때 그 아버지 마음을 미루어 짐작합니다. 시골집 안방 벽에 옷걸이 대용으로 쾅! 박힌 못은 아버지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정수리 불똥 튈 때마다 훌쩍 튕겨나가고픈 맘 꾹꾹 박아 넣었을 아버지. 평생 덜미를 붙잡힌 채 궂은 못질 쩡쩡 견뎌왔을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이제는 허리를 못 쓰고 시골집 아랫목에 꾸부정 박혀 있습니다. 녹슬고 구부러진 못 그 한 몸에 온 식구가 무거운 겨울 외투처럼 매달려 살았음을. 아버지를 뵙고 오는 길 가슴에 대못 하나 아프게 박혔습니다.

아내의 시

다음날 노동을 생각하며 끄응 돌아눕는 게 익숙한 어느덧 결혼 15호봉 차. 아내는 시인이 되어갑니다. 아까부터 무언가 끄적끄적 거리던 아내가 볼펜을 쥔 채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아내 머리맡에 쓰다만 공책을 가만히 펼쳐 봅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콩나물 1,000원, 파 한 단에 3,000원, 아이들 교재비 35,000원 남편 약값 120,000원……. 그리고 맨 마지막 줄에는 쓰다가 두 줄로 지운 파마 35,000원. 두 줄로 지운 꾹꾹 눌러 쓴 볼펜자국을 보니 몇 번이고 망설였을 아내의 고심한 흔적이 여지없이 엿보입니다. 그 은유법 하나 없는 아내의 시 한 줄. 그렇지만 세상 어떤 名詩보다 제게 큰 울림을 줍니다. 한참을 아내의 가계부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미처 갈무리 못한 것 때문일까요. 곤한 아내가 뒤척뒤척 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아내는 꿈속에서도 끙끙 시를 쓰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날 아침녘에도 온몸을 다해 시를 쓰는 아내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잠결에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문틈으로 내다보니 이른 아침부터 낑낑- 아내가 쓰레기봉투 머리끄덩이를 잡고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쓰레기봉투 금방이라도 목이 졸려 질식할 것만 같은데 아내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테이프로 꽁꽁 입막음까지 하였지요. 그렇게 아내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그 신통한 요술을 넋 놓고 보면서 그때는 기껏 그 봉투 값이 얼마 길래 저리 청승인가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내의 손끝에서 벌어지는 요술로, 그 시 한 줄로 저와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음을. 그래 내가 이만큼 사는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언제나 빠듯한 살림살이 원망 한 번 없이 오늘도 아내는 가족을 위해 끙끙 시를 쓰겠지요. 아내의 손끝에서 신묘하게 빚어지는 저 애틋한 시 한 줄로 내 노동이 반짝반짝 빛남을. 추신- 첫 시집을 세상에 내 놓을 수 있었던 건 오롯이 아내 덕분입니다. 또한 김명환·이한주 시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 이 시집은 없었음을. 하늘은 저에게 어린 시절 가장 소중한 사람 ‘어머니’를 떼어 놓은 게 맘에 걸렸나 봅니다. 그래서 분에 넘치는 아내와 김명환·이한주 시인을 동아줄처럼 저에게 내려 보내주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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