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그를 듣는다는 것'.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어느 누구든 마찬가지라 생각을 해봅니다. 제게도 김광석은 그랬습니다. 저 역시 그의 음악으로 한 시절 진하게 위로받고 인생을 한 수 배운 수많은 이들 중 하나입니다. 다만 행운이라면, 그를 알 즈음 막 사진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저는 그의 곁을 맴돌며 한 컷 한 컷 마음을 다해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앵글도 노출도 기교도 몰랐습니다. 오로지 그를 '찍고 싶다'는 의욕만 믿고 날 것 그대로인 시선으로 다가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사진들은 1993년부터 천 회 공연이 열린 1995년 여름까지의 기록입니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은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라졌다. 그들의 삶 역시 남녘땅의 일상과 다르지 않음을 새롭게 ‘보고 들었’다. 없는 것을 만들어 알게 된 것이 아니다. 이념과 체제의 장벽에 가려 보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본 것이다. 가슴 벅찬 깨달음이었다. 반백년 넘게 한쪽 만 보며 따져 묻던 시선을 거두고보니 그들의 말처럼 ‘사는 것이 다 똑같은’ 우리네 정경이었다. 마주하는 모든 찰나들을 놓치지 않으려 나의 카메라는 내내 춤을 추었다.
지난 2003년 이후 더 이상 북녘 땅을 밟을 기회는 없었다.
멈춘 걸음을 다시 이을 수 있다면! 여러 번 만나며 우정을 쌓았던 북측 안내원들과 보통강 기슭에서 다시 만나 룡성맥주를 곁들이며 흉금 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한때 남녘 남학생들의 마음을 들끓게 했던 당시 김일성종합대 여대생 ‘장류진’씨에게도 늦었지만 그를 찍은 사진 한 장 꼭 건네주고 싶다. 대동강변 공원에서 만났던 수줍음 많던 신랑신부와 다 키운 자녀들 얘기로 꽃을 피워보는 상상도 해본다. 나아가 평양에서 사진전을 여는 꿈도 꾼다.
남과 북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날들이 곧 오리라는 소망을 품어본다. - 작가노트 中
나누어 경계 짓거나 구분하지 않는 용기가 무엇인지를 도리어 길 위에서 얻었습니다. 여전히 부질없는 감각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기에 한없이 부끄럽고 또한 고맙기만 합니다. 등을 돌려 다시 걷는다는 것.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를 것 없이 앞으로 가는 것이기에 스스로 위안을 얻습니다.
조금은 더 느리게 더 천천히 더 깊이,
이젠 달팽이의 몸짓처럼 그리 가려 합니다.
십 수년 된 것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가득 쌓인 필름과 메모리칩을 살펴보는 시간들이 꽤나 길었습니다. 어설픈 시선에 몸 둘 바를 모르고 나름 익은 시선에 스스로 감사해하며 또 한 권의 책을 꺼내 놓습니다. (프롤로그_'달팽이의 몸짓처럼 느리게 바라보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