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보면 파편으로 차 있는 일상 가운데 그 안의 삶은 어떻게든 맑게 눈뜨고 싶다는 믿음이 컸던 것 같다. 이 글은 그 믿음을 위해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한 흔적들이다.
오래전부터 노트에 메모되었던 글들이 모였을 때 그 흔적이 아픔이고 견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시詩가 다 말하지 못했던 생각에 대해, 그리고 말해도 닿을 수 없었던 세계를 향한 이 글들을 ‘아포리즘’이라 일괄해보았다.
일반 아포리즘이 주는 교훈적인 내레이션을 벗어나고 싶었고 얼마간은 실제와 이미지와 인식이 춤추는 말을 감각적으로 받아적는 편에 기울었다.
시인은 시로써 살지만 더 정확하게는 시를 품은 인식으로 산다. 이때의 인식은 실천 가능한 삶까지를 아우른다. 이 글들은 그 인식으로 차오르던 순간의 성찰인 셈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시였다가, 달리 보면 약속이었다가, 다시 보면 당신에게만 속삭이는 비밀이기도 하다.
바람이라면 함께했던 고통과 희열과 발견의 이 기록이 사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글을 쓰는 동안 누추했던 내가 깨끗하고 가벼울 수 있었다.
많게는 온전한 기쁨에 떨었다.
문학의 힘, 언어의 선물이라 여긴다.
2019년 4월
끌어모은 이삭들.
말(馬)안장에 얹어 보낸 뒤, 살펴보니
말(言)을 따라간 것들 거의 뒷모습이다.
뒷모습엔 눈물이 있다.
묵묵히 견딘 시간들이 있다.
그 측은한 모습들을 베끼고 옮겨보았으나
말은 없고 말이 많으니 그 수레 멀리 가진 못하겠다.
2006년 가을 - 초판 시인의 말
끌어모은 이삭들,
말(馬)안장에 얹어 보낸 바퀴 자국을 살펴보니
말(言)을 따라간 것들 거의가 뒷모습이다.
뒷모습엔 눈물이 배어 있다.
묵묵히 견딘 시간들이 함께 있다.
그 측은한 모습들을 베끼고 옮겨보았으나
말(馬)은 없고 말(言)만 많으니 그 수레 또한 멀리 가진 못하겠다.
둘러보면 파편으로 차 있는 일상 가운데 그 안의 삶은 어떻게든 맑게 눈뜨고 싶다는 믿음이 컸던 것 같다. 이 글은 그 믿음을 위해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한 흔적들이다.
오래전부터 노트에 메모되었던 글들이 모였을 때 그 흔적이 아픔이고 견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시詩가 다 말하지 못했던 생각에 대해, 그리고 말해도 닿을 수 없었던 세계를 향한 이 글들을 ‘아포리즘’이라 일괄해보았다.
일반 아포리즘이 주는 교훈적인 내레이션을 벗어나고 싶었고 얼마간은 실제와 이미지와 인식이 춤추는 말을 감각적으로 받아적는 편에 기울었다.
시인은 시로써 살지만 더 정확하게는 시를 품은 인식으로 산다. 이때의 인식은 실천 가능한 삶까지를 아우른다. 이 글들은 그 인식으로 차오르던 순간의 성찰인 셈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시였다가, 달리 보면 약속이었다가, 다시 보면 당신에게만 속삭이는 비밀이기도 하다.
바람이라면 함께했던 고통과 희열과 발견의 이 기록이 사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글을 쓰는 동안 누추했던 내가 깨끗하고 가벼울 수 있었다.
많게는 온전한 기쁨에 떨었다.
문학의 힘, 언어의 선물이라 여긴다.
2019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