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울고 난 뒤 편안해졌던 한 때의 기억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떠올리며 용기를 내서 울보의 기록을 세상에 내놓으려 결심했습니다. 울보에게는 습이 되어 이제는 차라리 편안해진 슬픔에게 때 늦었고 어눌하지만 토닥토닥 진심어린 위로를 해 주고 싶었습니다.
사십여 편의 시를 정리하면서 저는 슬픔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수밖에 없었는데 정리를 한 후에야 알았습니다. 슬픔을 위로한다고 했지만 정작 위로를 받은 것은 저였다는 것을. 저를 자기 긍정에 이르게 한 것은 놀랍게도 슬픔이었다는 것을.
오늘도 슬픔은, 삶에 얼거나 데여 발악하는 저에게 빈 어깨를 슬그머니 내어 준 채, 노을이 비친 저녁 길을 쓸쓸하고 조용하게 바라봅니다.
두 번째 시집을 낸 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한때 시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도 하였다. 이 암울한 시대에 시가 무슨 힘이 되겠느냐는 자문 때문이다. 기득권자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들의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 그건 아마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이리라 생각했다. 목구멍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분(?)들이 버젓하게 대통령이 되고, 사회 지도층이 되고 있는 현실, 부동산 투기에 위장전입에 자식들 불법 병역기피, 세금 포탈을 하지 않으면 장관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들이 우습게 아는 3류 인생도 값어치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