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1일, 아내가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갔다.
돌이켜 보니 마흔 해 넘도록 내 삶의 중심이었다.
그와 함께, 그로 하여, 그를 위하여
그에게 들려줄 시를
한 자 한 자 마음에 문신을 새기듯 써보았다.
내 글씨만 보면 웃던 생시처럼
저세상에서도 보고 웃었으면 좋겠다.
아내는 불이었고 나는 물이었다. 전방에 있을 때였다. 언젠가 불같은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아내의 편지글에 나는 그 불길마저 잠재우며 오래도록 흘러가는 물의 사랑이 더 좋다는 답장을 썼다가 결별의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몇 달이 걸린 아내의 침묵에 결국 나는 백기 투항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물의 사랑으로 시를 썼다. 내가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헤아리는 모든 것을 시로 써서 아내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쓰는 모든 시들은 아내에게 보내는 긴 편지글이다. 지금도 나는 저세상의 아내에게 내가 죽어야 끝이 나는 긴 편지글을 하염없이 써서 보낸다.
'아'는 無의 산스크리트어 발음(A)이다.
2005년, 아내가 오랜 투병 끝에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마음만 한자리에 서성이다가 찾아낸 말,
참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無字 話頭를 다시 만났다
요즘의 내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아,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11번째 새 시집을 마치고, 12번재 새 시집의 첫번째 시에서 나는 "혼자서 놀고, 혼자서 사랑하고, 혼자서 즐거워한다"고 썼다.
그런즉 이 시집은 그러기 전에 집을 찾아, 다시 집을 찾아, 길을 찾아, 혼자서 헤매고 다닌 작품들이다.
詩語를 곁들인 작품들이 많아서 해설은 생략하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