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살이가 늘 상처투성이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시인들만큼 미늘의 바늘로 상처를 낚아채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빛나는 죽음의 촉수들이 향하는 행로를 지켜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죽은 시인과 죽지 않은 시를 동시에 만나는 순간의 벅찬 ‘어처구니’가 나를 더더욱 이 작업 안으로 몰아붙였다. 열두 명의 시인들을 모두 만난 후의 감정이란, 잊고 지낸 온기와 이름 없는 악기 하나를 선물로 받는 기분이다.
대학원 시절 고전문학에 관해 공부하며 『조선조 시문집 序跋의 연구』라는 책을 공부할 때 마음 깊이 공명한 적이 있었다. 서문과 발문이야말로 작품집의 정수를 담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겠거니 생각해 왔다. 시를 쓰고 공부하면서 적지 않은 시집을 읽었다. <시인의 말> 혹은 <자서>를 읽으며 지난날 서발문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감흥을 다시 되새겨 보게 되었다. 한 권 시집의 정수가 <시인의 말> 혹은 <자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확인할 때 어떤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잡지를 옮겨가며 연재하다 그치기를 여러 번 했지만 글을 쓰는 내내 즐거웠고 한편으로는 쓸쓸했다. 빛나는 <시인의 말>이 시로 형상화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움이었지만 너무 잘 알고 있는 분들의 부재는 어떤 쓸쓸함을 불러왔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잡지를 옮겨가며 글을 쓰다 보니 글의 분량에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핵심은 비껴가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대로 책으로 묶게 되었다. 많은 기억의 오류가 있을 터이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부끄러운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 - 책을 펴내며
사람살이가 늘 상처투성이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시인들만큼 미늘의 바늘로 상처를 낚아채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빛나는 죽음의 촉수들이 향하는 행로를 지켜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죽은 시인과 죽지 않은 시를 동시에 만나는 순간의 벅찬 ‘어처구니’가 나를 더더욱 이 작업 안으로 몰아붙였다. 열두 명의 시인들을 모두 만난 후의 감정이란, 잊고 지낸 온기와 이름 없는 악기 하나를 선물로 받는 기분이다.
요절이란 물리적 죽음과 의식의 죽음이 한 지점에서 만나 불꽃처럼 타오르다 소멸해간 흔적이라는 것이 내 개인의 생각이다. 그 소멸의 흔적을 마주했을 때 어떤 통일적 인상을 느끼게 되는 것도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의 모든 촉수들이 죽음이라는 물가로 그 뿌리를 아주 서서히 어느 순간 급속히 뻗어가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은 두렵고도 황홀한 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