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CGV와 롯데 시네마, 메가박스 같은 극장 체인이 시장을 분할 지배하는 와중에서 전통적인 극장들이 스러져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1930년대 말 조선인 영화상설관 단성사를 휩쓸어갔던 광풍을 상기했다. 제국 일본의 거대 기업, 도호(東寶)와 쇼치쿠(松竹)가 식민지 조선의 극장을 자신들의 배급 체인으로 묶어내던 시절, 좁은 조선 땅을 벗어나 제국이 펼쳐놓은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하기를 꿈꾸며 일본의 대자본에 스스로 굴복했던 조선인 영화 기업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던 그 시절에, 시류(時流)를 타지 못한 조선인 영화상설관 단성사는 이름마저 잃고 2류 극장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감당해야만 했었다. 단성사가 올라타지 못했던 그 시류가 식민지 현실 속에서 힘겹게 유지되어온 조선영화의 문화적 독자성을 흘려보내는 것이었음을 인식한다면, “흘러간 일홈” 단성사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일이 한갓 호고주의자(好古主義者)의 소일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뚜렷이 인식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차이를 무화(無化)하고 모든 것을 중심으로 통합하는, 그럼으로써 문화를 획일화하는 자본의 힘이다. - 저자 ‘서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