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잠시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집이 창이(Changi) 국제공항에서 가깝기도 했고, 그곳 지하 식당에서 파는 음식들이 입에 잘 맞아 주말에 간혹 그곳을 찾곤 했었다. 한번은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뒤편에서 이국적인 목소리의 아이가 우리말로 “엄마”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분명 목소리는 외국 아이인데, 엄마라니.’
궁금증을 안고 뒤를 돌아보았다. 인도 아이였다. 당시에는 궁금증만 안고 있다가 나중에 인도 친구에게 물어보니, 정확히는 타밀어로 ‘엄마’, ‘아빠’와 같은 단어들의 발음과 쓰임이 우리말과 같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특히 우리의 언어가 자신의 언어와 비슷하다고 설명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니?”라고 도리어 묻는 것이 아닌가. 그때 문득 ‘우리의 언어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던 기억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은 기원전 4000년경 수메르인들이 남긴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말보다 글이 늦게 발전했을 테니 인류에게 언어의 기원은 비밀스럽기만 하다.
구약 성경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들짐승과 새들을 만드신 후 첫 인간인 아담이 그들에게 이름을 붙이도록 하셨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담은 그때도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또, 북유럽 신화 속에서 에시르 신족으로 바람과 전쟁, 영감, 영혼 등을 주관하는 주신(主神)인 오딘은 서리 거인족의 두목 이미르와의 치열한 싸움 끝에 거인족을 죽이고, 그의 살로 땅을, 뼈로 산과 바위를, 발가락으로 돌과 옥을 만든 후 피로는 호수와 바다를, 두개골로는 하늘을 만든다. 이후 그의 형제들과 바다를 거닐다 물 위에 떠다니는 통나무를 건져 올려 남자인 아스크(Askr, 물푸레나무)와 여자인 엠브라(Embra, 느릅나무)를 만들고, 그들에게 오딘은 호흡과 생명을, 동생 빌리는 지혜와 힘을, 막내 베이는 언어와 지각력을 주었다. 두 이야기를 통해 ‘언어는 신의 선물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조심스레 내려본다.
‘스피치’라는 영역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낡은 신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자의에 의한 학습에 의해서라기보다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태생적으로 타고난 기능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타고난 ‘신의 선물’을 보다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언어라는 재능’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책을 집필하며 단순히 기능적 메시지가 아닌 우리의 DNA인 언어를 매개로 자신감을 찾고,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얻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