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이자 자작극일 나의 산문은 시와 세상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전면적 오인과 왜곡의 기록이다. 미학이 양보된 이 잡념들은 일구지난설(一口之亂設 )의 문자적(文字的 ) 얼룩이다. 잠시 졸다 눈 떴을 때 '잠시' 얼비치던 꿈에 구두점을 찍고 싶었던 것일까? 잠패롱을 하면서 이 글에 알몸을 걸치던 지난 여름날의 새벽 시간은 행복했다. 에크리가 담아낼 수 없는 생의 어떤 출렁임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땐 그랬다.
자신을 시인이라 소개하는 사람을 만나면 좀 그렇다. 그러면 뭐라고 하냐고 되묻는 사람은 더 그렇다. 이런 사태에 대해 내가 뾰족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그렇다. 시장바닥에 돌아다니는 시인이라는 용어는 직업군도 아니요, 무엇도 아니다. 시인이라는 이데아에 대한 관습적 사칭일 뿐이다. 나 역시 다른 대안이 없다. 시를 쓰는 인간을 시인이라 부르지 달리 뭐라고 호명하겠는가. 역시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이 이 관습이 이 당함이 왜 이리도 어색한가에 대해 자문하고 있는 것이다.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여전히 답이라고 생각하며 답안을 궁리하고 있는 나여. 동지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