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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손보미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80년, 대한민국 서울

직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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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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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랄프 로렌

나는 소설가가 굉장히 좋은 망원경을 가지고 있는 우주인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 종종 생각한다. 저멀리 낯선 행성의 작은 불빛을 응시하고 마침내 그 속에서 그(혹은 그녀)의 얼굴-표정을 발견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혹은 그녀) 때문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안도하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고, 때때로 화를 내기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 그저 나는 소박한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내가 ‘매우’ ‘멀리’ 존재하는 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게 되기를.

사랑의 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건대, 『사랑의 꿈』에 실린 소설들은 바로 그때 느꼈던 낭패감과 비정함을 바탕으로 쓰인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기에 실린 소설들을 쓰던 시간과 공간을 기억할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소설을 쓰던 시간은 다른 누군가의 변덕스러움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는데, 그것들은 온전히 나의 변덕스러움이 선택한 세계였다. 때때로는 신이 났고, 때때로는 좌절했으며, 때때로는 현기증이 났다. 때때로는 주눅이 들었고, 때때로는 고양되었다. 내가 통과한 시간들을, 이렇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로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았다.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첫번째 소설집을 발간한 게 2013년 여름의 일이다. 그해에 나는 여러 가지 다짐을 했는데 그중 하나는 다시 작품집을 내게 된다면 작가의 말은 쓰지 않아야겠다는 것이었다. 무슨 특별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2018년 여름에 나는 또다시 이렇게 작가의 말을 쓰고 있다. 거의 의식하지 못했는데, 꽤 오랜만에 작품집을 출간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동안 쓴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는 동안, 나는 각각의 작품을 쓰던 그 장소와 시간 그리고 작품을 쓰는 동안의 내 마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즐겨 듣던 음악을 다시 접하게 되면, 그 음악이 나를 그 시간과 장소와 마음으로 데려가는 것처럼. 그러니까, 마치 꿈처럼. 나는 그 꿈속에서 맥북에어가 올려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때때로 맹렬하게 자판을 두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멍하니 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기도 하다. 즐거울 때도 있고, 곤란함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 곤란함. 나는 가끔 이렇게 중얼거리고 만다. 아, 이거 너무 곤란하게 됐는걸? 하지만,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자주 다른 생각에 빠져들어 있다. 실제로,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틈만 나면 다른 생각-그즈음 본 영화라든지, 연예인의 가십이라든지, 예쁜 구두라든지, 며칠 전 우연히 만난 동창과의 대화라든지-에 빠져들곤 했다. 한동안 나는 이것을 심각하게 걱정해서 내가 주의력 결핍 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동생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녀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자주 그러는걸.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느라 문장을 거의 쓰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 해가 지면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아, 어떻게 해? 오늘도 한 글자도 못 썼어, 집에 가고 싶은데 못 가겠어,라고 문자를 보내곤 했다. 그러면 그는 언제나 나에게 이렇게 답을 보내주었다. 그것도 소설 쓰는 시간에 포함되는 거야. 내일 다시 쓰면 돼. 그러니까 괜찮아. 돌이켜보면 그 말은 언제나 사실이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면 언젠가 한 작품을 쓰는 시간은 끝이 났다. 작품과 내가 서로에게 만족하는 끝도 있었고, 나는 만족하지만 작품은 만족하지 못한 끝도 있었고, 어쩌면 그 반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시간은 어쨌거나 끝이 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시간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낸다. 적어도 이게 내게는 아주 커다란 행운처럼 느껴진다. 이런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왜 글을 쓸까? 어쩌면 우리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 그저 흩어져버리는 일상을 붙잡아두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게 일기든, 산문이든, 편지든, 소설이든 간에 문장을 쓴다,는 이 물리적이고 소박한 행위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 시간을 붙잡아서 미래의 우리에게 전달해줄 것이다. 그리고 너무 큰 욕심이겠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 책에 씌어진 문장들을 통해 자신들의 시간과 공간을-아주 잠시라도-마주하게 되기를 지금의 나는 온 마음을 다해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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