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에 관해 줄곧 생각하면서 한 무더기의 시간을 통과했다. 안팎으로 춥고 어두운 시간이었다. 이 책은 검정이라는 단어 하나가 불러낸 여러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장면이 나에게 속하는 것이든 아니든, 모두 동등하게 다루며 기록했다. 하나의 집을 짓는 대신에 통로 비슷한 것을 여러 개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입구와 출구를 온전히 갖춘 통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길 잃어볼 만한 어둠이라면 좋겠다.
나는 사물에 대해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긴 수다가 끝나고 나면 그것이 전혀 사물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사물은 결코 사물로서 온전히 머무르는 법이 없다.
사람들이 대상을 어떻게 이름 짓는지, 사물을 둘러싼 사건들이 어떤 방식으로 언어화되는지, 한 줌의 사실과 한 무더기의 소문이 어떻게 서로 몸을 바꾸는지, 나는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다. 그 질문의 답을 구하는 방법 또한 산만하게 언어의 안팎을 헤집고 다니는 일이다.
나는 이미지의 신비화 과정을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언어의 굴레에 갇히지 않는 이중의 전략을 취하기 위해서는 ‘사실적 허구’의 상상력이 새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삶의 장면들을 낯설게 만드는 시도에 속한다. <모나미 153 연대기>는
모나미 볼펜에 관해 수집한 여러 가지 정보에 픽션을 뒤섞어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사실에 기반한 허구이기도 하고 허구가 불러낸 사실이기도 한 것이다.
정보 유통이 투명하지 않았던 60-80년대 권위주의 시대의 축적된 이야기는 90년대에 중등교육을 받은 나와 같은 세대에게는 영원히 되풀이되는 일종의 구전동화일 수 있다.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일련의 이미지들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모나미 볼펜과 만난다. 그 결과, 과장과 생략과 인용과 거짓말로 구성된 너스레의 조각들을 이루었다.
이야기라는 것이 어차피 허구성을 띠는 것이라면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는 우리의 역할도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신중한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뻔뻔한 편집자로서 텍스트와 이미지를 다룬다. 결국 작업의 한 축을 이루면서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는 것은, 쓴다는 행위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