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쓸 수 있는 것을 쓸 수 있는 만큼 쓰겠다’고 적었다. 그것이 얼마나 쉬운 말이었는지 깊이 깨닫는 십 년이었다. 내가 감히 쓸 수 있는 것은 드물었고, 있다 해도 제대로 써내기는 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이제 나는 ‘최선을 다해’라는 말을 앞에 덧붙이고 싶다. 최선을 다해, 쓸 수 있는 것을 쓸 수 있는 만큼 쓰겠다. 그렇게 다시 십 년이 지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함께 견뎌 준 K에게 이 책을 바친다.
돌아보니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있는 건 결국 기댈 수 있는 이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그런 안전기지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당신에게.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소설이 미약하나마 어떤 인력이 되기를 바라며 썼다. 그 간절한 마음은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을 쓸 때까지 같았다.
(…)
부디, 지금 누구도 완전히 혼자이지 않기를.
살아주기를.
2024년 늦여름
계절은 모든 인간을 각기 다른 모양으로 지나간다. 인간은 누구나 고유한 방식으로 이상하니까. 계절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통과하며 낯설게 아름다워진다. 프리즘을 경유한 빛처럼, 경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하게 다채로운 빛깔로.
내가 소설을 읽고 쓰는 까닭도 거기 있는 것 같다. 어떤 시공간에 놓여 있는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좋아서. 삶에서든 글쓰기에서든, 무디고 참을성 없는 내게 그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서 또 해볼 만한 일이다. -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