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과 사회 제도가 발달하면 삶은 진화한다. 하지만 악도 그만큼 진화한다. 거리에 나와 "아이 러브 황우석"을 외치는 패거리는 차라리 순진하다. 진화한 패거리는 시스템 속에서, 집단의 등 뒤에서,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적의 뒤통수에 소리 없이 독화살을 날린다. 그러고도 그들은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그 양상은 제복과 구호 속에 자신을 숨긴 채 폭력을 일삼는 점령군의 행태와 닮았다. 피해자는 선연한데 가해의 책임자는 저기 멀리서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기만 하는 풍경! 나는 이게 개인적 주체가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마주쳐야 하는 그로테스크한 현대적 스펙터클이 아닐까 싶다.
모은 글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딱 하나의 목소리만 도드라진다. 집단에 대한 불신과 개인에 대한 희망!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고 책 제목을 붙여놓았지만 정말 그런지 확신은 없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그런 희망을 갖게 됐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온전한 개인의 관계이기를 바라는 것은 일종의 몽상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모든 집단은 불온하고, 집단 속의 개인은 불구이기 때문이다.